앨런 더쇼비츠에 대한 지젝의 비판부터 시작해보자. 테러리스트의 인권보다는 미국인의 생명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면서 럼즈펠드가 고문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면, 곧 ‘인권침해’ 비난 같은 장애물을 제거했다면 지젝이 보기에 더쇼비츠가 한 일은 더 나쁜 쪽이다. “그는 럼즈펠드에 대해 자유주의적 반응을 가장하여 고문을 합법적인 토론논제로 받아들이면서 사실상 반제 컨퍼런스에서 유대인의 전멸에 대한 법률 존중주의적 반대자처럼 주장하였다.”(<실재계 사막>, 187쪽)
더쇼비츠는 ‘법률 존중주의자’의 입장에서 럼즈펠드가 은연중에 옹호하는 고문에 반대한다. 체포된 알카에다 부사령관 아부 주바이다에 대한 고문에 반대하는 이유로 그는 두 가지를 든다. (1) 주바이다의 경우는 ‘째깍거리는 시계’ 상황의 사례가 아니다, (2) 그를 고문하는 것은 합법적이지 못하다. 만약 고문을 합법화하려면 미국이 포로의 지위에 관한 제네바 협정을 더 이상 준수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야 한다. 지젝이 보기엔 이러한 입장이 자유주의의 궁극적인 윤리적 실패를 보여준다. 어째서 그런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반제 컨퍼런스(Wannsee Conference)’는 보통 ‘반제 회의’라고 칭하는데, 히틀러의 명령으로 베를린 근교 그로센반제에서 소집된 회의로 중앙안보국의 유대인 문제 담당국장 아돌프 아이히만을 비롯해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이끄는 15명의 나치 관료가 참석했다고 한다. 이 회의에서 소위 유럽 유대인을 절멸시키는 ‘최종해결책(final solution)’이 결정되었다. 본격적인 홀로코스트의 서막이었던 셈이다. 지젝은 고문에 대한 더쇼비츠의 반대는 ‘불법적’이라는 이유로 유대인 절멸 계획에 반대했던 반제회의 법률가를 떠올려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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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률가는 이렇게 항의했다고 한다. “저는 일주일 전에 총통을 찾아가 뵈었습니다. 그는 어떠한 유대인도 불법적인 난폭한 조치로 고통 받지 않을 것임을 저한테 진지하게 보장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회의를 주재한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조롱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했다. “당신이 총통께 똑같은 질문을 다시 물어본다고 해도 그는 당신에게 똑같이 대답하실 거요.” 요점은 무엇인가? “나치의 담론은 두 가지 수준에서 작용하고 있었다는 것. 명백한 진술의 수준은 알려지지 않은 역겨운 뒷면에 의해 보충되었다는 것이다.”(<실재계 사막>, 188~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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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진술(explicit statements)’은 겉으로 드러난 진술, 공식적으로 말해진 진술을 가리킨다. ‘유대인들에 대한 불법적인 조치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같은 히틀러의 보장이 그런 ‘명백한 진술’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거기엔 ‘알려지지 않은 역겨운 뒷면(obscene unacknowledged underside)’이 깔려 있다. 말하지는 않지만 암묵적인 이면이 있는 것이다. ‘법률 존중주의자’와 강경노선 간부 사이의 의견 차이는 거기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가 ‘명백한 진술’만을 되뇌며 항의하는 법률가를 조롱하는 것도 어떻게 해서 그런 ‘이면’에 대해 무지할 수 있느냐는 판단에서이다.
법률가의 입장은 어떤가. 그는 자신 또한 유대인들을 아주 미워하지만 그들에게 극단적인 조처를 가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쪽이다. “그들은 법의 대타자, 즉 합법성의 법적인 허구에 의해 메워지지 않는 판결의 심연과 직면하게 되어 두려워하게 되었다.”(<실재계 사막>, 189쪽) 여기서 ‘판결(decision)’은 ‘결정’이라고 옮기는 게 낫겠다. ‘최종 해결책’처럼 법에 의해 보증되지 않는, 법이라는 대타자에 의해 지지되지 않는 결정에 ‘법률 존중주의자’들이 매우 당혹스러워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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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호모 사케르의 삶에 대한 후정치적 통제와 함께 나치의 법률 존중주의자들의 이런 마지막 보류도 사라져가게 되었다.”(<실재계 사막>, 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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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케르의 삶에 대한 탈정치적 통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지젝은 이 탈정치 시대에는 그나마 그 ‘법률 존중주의자’들마저 사라지고 없다고 말한다. 번역본에는 이어지는 한 문장이 누락돼 있는데, 이런 내용이다. “행정적 조치가 법이라는 대타자를 통해 보증하는 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there is no longer any need to cover administrative measures with the legal big Other).”
번역본에서는 이어지는 대목이 “행정적인 조치가 차츰 법의 지배로 대체되어가는”이라고 돼 있는데, 거꾸로 옮긴 것이다. 행정적인 조치가 차츰 법의 지배를 대체해가는 과정이 ‘생체정치’의 과정이다. 이런 과정의 전조는 1960~1970년대에 파라과이에서 있었다고 한다. 알프레도 스트뢰스너가 이끄는 권위주의 우파 체제는 예외 상태에 대한 논리를 극단까지 밀어붙였다(최근 위헌판결을 받은 우리의 유신시대 긴급조치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당시 파라과이는 ‘정상적인’ 의회민주주의 국가였지만, 스트뢰스는 예외 상태론을 제기했다. “우리 모두는 자유와 공산주의 간의 전 세계적인 갈등 때문에 긴급사태 속에서 살고 있는데, 헌법의 이행이 무기한 연기되고 영구적인 긴급사태가 선포되었다.”(<실재계 사막>, 190쪽) 그리고 이런 긴급사태는 4년에 한번 선거일에만 정지됐다. ‘정상적인’ 민주주의적 자유가 오히려 ‘예외’가 돼버린 것이다.
이러한 역전은 9․11 이후의 미국 사회에서도 감지된다. 테러리스트로부터 우리를 방어하기 위해선 우리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논리는 ‘긴급사태’의 논리, 예외 상태의 논리를 반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긴급사태인가? 당시 부시 대통령의 표현을 빌면 미국이 ‘전쟁 상태’에 놓여 있어서다. 하지만 어떤 전쟁인가? 절대 다수의 국민이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면 전쟁은 어디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런 상황을 ‘전쟁 상태’로 간주한다면, 전쟁과 평화의 구분 자체가 희미해져가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뜻이 된다. 평화 상태 자체가 동시에 위급한 긴급사태로 간주될 수 있는 시대 말이다.

여기서 구별이 필요한 것은 ‘테러와의 전쟁’을 앞세우는 자유주의적-전체주의(전체주의화하는 자유주의)의 긴급사태와 진정 혁명적인 긴급사태다(이것은 사도 바울이 ‘종말’이라고 말한 긴급사태다). 이 둘은 어떤 관계에 놓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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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관이 긴급사태를 선언할 때는 정의상 진정한 긴급사태를 회피하고 ‘사태의 정상적인 추이’로 되돌려놓으려는 필사적인 전략의 일부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긴급사태’라는 반작용의 모든 선언들은 공통된 특징 한 가지를 갖고 있다. 그들은 모두 대중의 불안(‘혼란’)을 막으려는 쪽으로 향해왔고, 정상을 되찾으려는 결정을 제시해왔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그리스, 칠레, 터키에서 군부는 총체적 정치화의 ‘대혼란’을 억누르기 위해 긴급사태를 선포했다.(<실재계 사막>, 191~1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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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국가들이 리스트에 한국 또한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반작용의’는 ‘반동적’으로 읽으면 되고, ‘정치화’라는 건 복수의 정치적 입장과 의견이 경합과 쟁투를 벌이는 ‘정상적인’ 정치 현상으로 이해하면 된다. 모든 반동적 독재 정권과 권위주의적 권력은 그러한 정상성을 억압하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구호. “이런 광기는 중단되어야 합니다. 국민들은 그들의 정상적인 직업으로 되돌아가야 하고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요컨대, 긴급사태라는 반동적 선포는 진정한 긴급사태 자체에 대한 필사적인 방어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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