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공격에 대하여 “미국은 억울하다!”와 “미국은 당해도 싸다!”라는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한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여기서 가능한 유일한 해결책은 바로 이런 대립을 거부하고서 두 가지 입장들을 동시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떻게? ‘전체성(totality)’이라는 변증법적 범주에 기댐으로써다. 이 두 입장 각각은 선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일면적이고 틀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기서 마주치게 되는 것은 도덕적 추론의 한계다. 도덕적 관점에서 보자면, 9·11의 희생자들은 무고하고, 공격 행위는 증오할 만한 범죄다. 하지만 그렇듯 무고하다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하지 않은 위치다. 곧 허위적 추상화에 불과하다.
이데올로기적 해석상의 충돌도 마찬가지다. 한쪽에선 9·11 공격이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선 세계금융자본주의의 중심과 상징에 대한 공격이라고 말한다. 이런 경우 테러리스트들도 잘못했지만, 미국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는 식으로 책임을 나눠가져야 할까? 하지만 지젝이 보기에 그 두 입장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곧 우리는 테러리즘에 맞서야 할 필요성을 수용하면서 동시에 그 테러리즘이란 용어의 의미를 확장하여 미국과 서구의 패권적 행위 또한 테러리즘에 포함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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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와 빈 라덴 간의 선택은 우리들의 선택이 아니다. 그들 모두는 우리와 맞서는 ‘그들’이다. 세계 자본주의가 전체성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그 자체와 그의 타자의 변증법적 통일체, 즉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기반 위에서 그것에 저항하는 세력들의 변증법적 통일체라는 것을 의미한다.”((실재계 사막>,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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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부시와 빈 라덴이 표면상 대립적으로 보일지라도 세계자본주의의 전체성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변증법적 통일체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9·11 이후에 등장한 두 가지 주된 내러티브는 모두 부정적이다. 하나는 미국식 애국주의 내러티브다. 무고하게 포위 공격을 당했으니 애국심을 되찾아 떨쳐나서자, 라는 식. 하지만 반대로, 미국은 과거 수십 년간 저지른 죄과에 대한 당연한 대가를 지불한 것이라는 좌파적 내러티브가 과연 그보다 더 나은 것인가, 라는 게 지젝의 질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좌파들의 반응까지도 모두 수치스러운 것이었다고 그는 평한다. WTC의 쌍둥이 빌딩이 거세(파괴)를 기다리는 두 남근 상징이었다는 페미니즘적 해석까지 동원되었고, 르완다, 콩고 등지에서 수백만 명이 학살당했던 것과 비교하면 9·11의 희생자 3,000명 정도는 별로 대수로울 게 없다는 대응도 제기되었다. 그리고 어차피 탈레반과 빈 라덴을 키운 건 미국의 CIA이므로 자업자득이란 주장도 나왔고. 이런 대응은 어떤가. “그렇습니다. WTC 붕괴는 하나의 비극이지만 우리는 그 희생자들과 완전히 결속되지 않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이것이 미국의 제국주의에 대한 지지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야말로 지젝이 보기엔 윤리적 파국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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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적합한 자세인가. 그것은 모든 희생자들과의 무조건적인 연대이다. 만약 당신이 “그렇기는 하지만, 아프리카에서는 고통 받고 있는 수백만 명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식으로 이러한 연대를 내키지 않아 한다면, 그것은 제3세계에 대한 동정심을 표명하는 것이 아니라 제3세계 희생자들에 대한 은근한 인종차별적 태도를 드러내는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좌파의 대응에 대한 지젝의 또 다른 비판은 9·11 공격 이후 몇 주간에 걸쳐서 “평화에 기회를! 전쟁은 폭력을 종식시키지 못한다!(Give peace a chance! War does not stop violence!)” 같은 낡은 주문만을 되뇌었던 행태를 향한다. 공격 이후의 새롭고 복잡한 상황에 대한 분석 대신에 ‘전쟁 반대!’라는 맹목적인 구호에만 매달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은 부시 정부도 시인한 것이니 좌파로선 맥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WTC 공격이 일종의 범죄 행위이며 그것을 감행한 하수인들이 범죄자로 취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편 좌파도 있었는데, 이런 경우엔 ‘테러’가 지닌 정치적 차원을 완전히 놓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맥없는 좌파들 덕분에 9·11의 비극에 대한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의 전유가 훨씬 쉬워졌다는 게 지젝의 분석이다. 모든 것을 테러에 찬반으로만 몰고 간 것이다. 하지만 테러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진정한 선택지가 아니며, 그러한 선택에 대한 유혹은 기각되어야 한다. 문제는 좀 더 복잡하다. 지젝이 던지는 두 가지 질문 혹은 요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오늘날 중요한 선택은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 대 근본주의(혹은 그 파생물) 사이의 선택일까? 둘째, 우리는 아프가니스탄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 이 각각이 갖는 의미에 대해선 다음 회에 마저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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