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제국
이인화 지음 / 세계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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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재밌다. 사실 이런저런 책을 둘러보다 마땅히 볼것이 없었는데 우선은 재밌게 읽어서 다행이다.

책 겉표지의 그럴듯한 문구에 많이 동했다. 어쩜!!!!!!!!! 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한국역사의 추리물이라는것이 그럴듯하고 (사실 한국역사는 한편의 완벽한 추리극이다) 환상의 제국이라는 말이 좋았다.

이인몽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나는 정조라는 인물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뭐랄까, 완벽한 군주상이었기 때문일까? 언제나 피지배자들은 지배자에게 저항하면서도 지배자를 꿈꾸는 것이기에. 게다가 그에 걸맞게 힘까지 있다면야 누구나 동경할 만한 인물이 아닌가.

여기서 누가 옳은가를 가리는 것은 참 바보같고 무의미한 일이다. 팔은 안으로 굽고, 가재는 게 편이라고 이인몽은 (게다가 그가 서술하는 얘기니까) 이인몽의 편에 서서 옳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그가 주장하는 것들을 국사시간에는 별로 좋지 않은 평을 들으며 커온 사람이니까 그가 말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완전히 동조는 못하겠으나 서술자가 주인공이다 보니 몰입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게 무슨 소용일까. 그냥 일단은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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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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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방금 책을 읽고(참고로 도서관에서 빌렸기 때문에 겉 표지가 없다) 처음으로 여기서 이 책의 표지를 봤는데 너무나 실례되지만 너무나 실망스럽다. 절대적으로 저런 유치한 이미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그냥 벗긴 채가 더 나은것 같다. 나의 정신건강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미스터 버티고 라는 제목에 더 많은 점수를 주는데 개인적으로(어디까지나) 공중곡예사라는 제목이 훨씬더 잘 어울린다. 곡예사 라는 그 한마디에 이 사람이 얼마나 험한 인생을 살까라는 추측을 했으니까.

 폴 오스터 책의 묘미는 누가 뭐래도 자타가 인정한 말빨이다. 내가 오스터의 책을 읽었던 <스퀴즈 플레이>는  그의 뉴욕식(배경이 뉴욕이었으므로) 양념이 재미있었으나 군데군데 과하게 양념을 치는 바람에 너무 짜졌다. 오히려 화려한 말빨에 자기가 넘어간 듯 했다. 사슴이 제 꼬리를 보고 놀라듯.  하지만 공중곡예사 에서의 양념은 딱 먹기 좋을 정도로 잘 버무려졌다. 그의 재치에 웃어 넘긴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말빨은 어디까지나 말빨인것이다. 조연이어야지 주연이 되서는 안된다.  내가 생각하고는 있었으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을 그의 감칠 맛 나는 혀로 읊어줬을 때의 시원함. 이 책을 읽어보면 적어도 한번은 내가 느꼈던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딱 압축하자면 인생사 새옹지마 정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 그의 인생은 심장박동 처럼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비해 격이 크다는 것 뿐이다. 그도 그것을 알고있다. 그리고 그것을 그냥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체념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의 있는 힘껏, 치열하게 인생을 산다는 점이다. 타고난 근성이랄까. 마음에 드는 주인공이다.

사실 스퀴즈 플레이 보고 그의 명성에 실망했었는데 이 책을 보고 다시 그생각을 재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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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과 사랑 서문문고 40
헤르만 헤세 지음 / 서문당 / 197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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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기에 아무런 리뷰가 없는지 궁금하다. 재미없게 읽었던지 아니면 너무나 흔한 청소년권장도서기에 쓸 필요가 없엇던건지. 나로선 꽤나 흥미로운 책이었는데 말이다.

뒤늦게 읽어 민망할정도다. 어렸을적엔 폼나려고 그냥 들고다니고 정작 읽으려고 준비하면 너무나 빽백하고 어려운 문장(그 당시에는)의 압박이 그냥 나도 모르게 책을 덮어버렸는데.   난 이책을 혼자 자취하며 아플때 일찍 일어나서 읽었다. 일곱시 부터 시작해 열두시까지 논스톱으로 읽은 이책은(나에게 이렇게 읽힌 책은 드물다) 각자 생각이 틀리니 느낀것들도 다양하겠지만 미술을 전공으로 하는 나에게 있어서는 강하게 꽂힌 느낌은 '열정' 이다. 과제의 압박감, 과제를 위한 과제들로 도대체 내가 왜 미술을 하는지 망각하게 하는 대학교육, 거기서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는 뭐 어쩔수 없었던 것같다. 열정을 강하게 느꼈던것은. 찔리는게 있다고 할까.하하

누구는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의 오랜 우정에 더 끌렸을 수도 있겠고, 누구는 골드문트의 자유로운 생활과 거기서 오는 고독 그런 것들에 더 마음이 끌릴수도 있겠지.  한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다양성들이란 정말이지 대단하다.  하긴 삶 자체가 원체 다양하니까. 당연한거겠지.

책을 읽고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좋아하는 회화수업의 '과제'였지만 하나의 '창조물'로 대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 어떤 작품들보다 즐겁게. 과도기 혹은 슬럼프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나에게 골드문트의 열정은 다행히도 조금더 탄탄한 마음을 지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나의 사랑하는 미술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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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1
우라사와 나오키 지음, 박연 옮김 / 세주문화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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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까지 만화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잘 짜여진 만화는 보기 힘들다. 1권부터 18권 완결까지 완벽하게 호흡하고 긴장감을 줄 수 있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아니다. 너무 궁금해서 잠자기 전까지도 잠못드는 심정을 아는가. 그것을 모른다면 이책을 추천한다.(강추! 오호호호홋)

이이야기는 몬스터쌍둥이가 태어나기전 이야기까지 상세히 다루는 집요함을 보인다. 태어나기전부터 성립되는 이야기다 이것이다. 그래도 선택받은 자들이니 기분은 으쓱하겠다.  덴마 자신은 이모든 희생들이 자신이 요한을 살리고 나서부터라고 자책하지만 모든일들은 덴마가 요한을 살리지 않아도 그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들이었다. 모두가 믿기 힘든 어린아이(요한)가 주요 인사들은 물론 상관없는 무고한 사람들까지도 잔인하게 공포를 충분히 맛(?)보게 한 뒤 죽이는 것이 그 아이가 커서 9년이란 세월이 흐른 뒤에도 더욱더 크게 일은 확대되어간다. 덴마는 사회적으로 매장된채 그렇게 9년을 요한을, 그러니까 몬스터를 죽여야만 한다는 그 하나의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찾아다닌다. 너무 복잡한 이야기라 한꺼번에 요약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알고있다.

결국 사람은 똑같은 것 같다. 덴마는 요한을 요한은 니나를 니나는 두 남자를 서로를 향해 찾아헤메고 있는 것이다. 다들 각각의 이유는 다르지만 말이다. 덴마는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결국 그는 죽이지 못한다) 요한은 니나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해 니나는 덴마를 대신해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결국은 그들도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 아무리 심오한 그 무엇이 있다고 해도 결국 그 것은 '어떻게 다스리냐'에 따른것이다. 누구나 그런 감정을 느끼며 산다.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며 버텨낸다. 그것이 만화에서는 만화의 특성에 따라 좀더 과장되게 그사람만 느끼는 것처럼 표현된것일 뿐이다. 우리가 그 만화를 읽고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증거가 아닌가. '나'만이 아닌 '우리'가 말이다.

여기서도 결말이 마음에 쏙 와닿지도 않았고 만족스럽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그간의 과정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것만은 변함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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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열린책들 세계문학 216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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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는 물론 장기, 바둑 등을 하나도 모르는 나는 재미가 약간 반감되는것을 감수하면서도 읽은 책이다. 매력적인 훌리아와 세사르 무뇨스, 세사람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는 이야기는 솔직히 상당히 흥미로웠다. 다른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눈을 떼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체스에 대해 전혀몰라도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 대강만 알아도 될정도로 설명도 잘되어있고 그림도 있어서 이해하기는 쉬웠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왜 세사르가 알바로와 멘추를 죽였는지 훌리아와 무뇨스에게 변명에가까운 설명을 할때는 공감하기 힘들었다. 공감했다면 나 자신이 약간 무섭지 않았을까도 싶다. 그리고 그림을 중세역사와 연결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반전은 내가 너무 기대를 많이 했던 것일까.

솔직히 기대이하였다. 약간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중세역사와 무언가를 연결시킨 반전을 원했었는데말이다.(그렇다고 귀신을 바랬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작가가 아니니.만약 그렇게 됐더라면 그것은 작가의 역량에 달려있겠지 싶다) 결국 그림에 매달렸지만 그 결과는 너무 먼 산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막바지에는 너무 앞서갔다. 결론이 조각처럼 너무 섬세하게 맞춰 있어서 재미가 떨어졌다. 결국은 세사르가 원하던대로 되지 않았던가. 그 인간이 신도 아닌데 말이다.

반전이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꽉찬 재미를 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결국 작가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사르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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