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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 ㅣ 우리 문화 그림책 5
김용택 지음, 전갑배 그림 / 사계절 / 2006년 2월
평점 :
이 아름다운 그림책에는 김용택 시인이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을 노래한 시 〈맑은 날〉이 전갑배 님의 곱디고운 수묵채색화와 함께 단정하게 어우러져 있다. 시인은 할머니의 죽음과 초상집 풍경, 장례 절차, 꽃상여, 빈 상여 놀이, 삼일장 등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장례 문화를 선연하게 보여주고 있어, 그림책 《맑은 날》은 요즈음 아이들이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우리 문화의 한 단면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해준다. 하지만 내 마음을 울리기도 하고 허허하게도 하고 먹먹하게 하기도 하고 그립게도 하면서 나를 깊이 흔들어댄 것은 그런 표면적인 유익성이 아니다.
‘죽음’은 어떤 형태를 띠고 있어도 그 자체는 지독히 무겁고 슬프고 아득하다. 동네잔치와 다를 바 없다는 호상(好喪)에도 죽음은 돌아간 사람이나 남은 사람에게 섧기는 마찬가지다. 생사는 어깨를 겯고 있다지만, 문득 마주치게 되는 죽음은 한없이 낯설기만 하다. 이만하면 한세상 다복하게 사셨으니 원은 없겠다 싶은 노인들의 죽음 앞에서도 막무가내로 눈물부터 흐르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시인의 할머니는 증손, 고손의 재롱까지 누린 다복한 장수 노인이다. 하지만 시인은 충분한 삶은 없다는 듯, 자식들의 머리가 하얗게 셀 때까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고 어느 맑은 봄날 죽음의 문턱에 이를 때까지 이승의 번잡한 이웃에게서 조금씩 잊혀지는 것으로 차곡차곡 저승길을 밟았던 할머니에 대한 애잔함과 애틋함을 허허롭게 노래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꽃자리에서 자손들은 올망졸망 삶을 다독인다. 하늘로 떠난 할머니와의 영영 이별을 가슴 한 켠이 저미도록 슬퍼하면서도 죽은 할머니의 상(喪)을 치러내는 고비고비는 산 생명의 떠들썩한 기운으로 들썩인다. 삶과 죽음이 그렇게 따사로운 봄볕을 받으며 한자리에 어우러진다.
우리는 보통 부고를 알릴 때 언제든 돌아가서 안식을 취할 곳이 죽음 너머의 세계인 냥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돌아가다’라는 동사에 진한 그리움을 감지한다. 언제나 내가 꼭 있어야 할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왠지 현실 속에서 탈골된 듯 삐거덕거리는 내 뼛조각이 그곳에서는 저절로 아귀가 딱 맞춰질 것도 같다. 사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을 의미하는 동시에 모든 것의 시작을 상징한다. 소멸 혹은 파멸을 뜻하는 반면에 재생 혹은 부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죽음이다. 맑은 날은 돌아가기에도, 돌아오기에도 참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