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0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두물머리》라는 단편소설집의 작가로 처음 만났던 이윤기는 이제 신화학자와 번역자로 더욱 유명해져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책도 158쇄이니, 신화학자로서의 이윤기의 명성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드높은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가 이윤기와의 만남이 썩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신화학자 이윤기에 대한 기대도 내심 아주 컸었나 보다. 그가 들려주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좋은 점뿐만 아니라 나쁜 점도 도드라져 보이니 말이다.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열쇠’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방대하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신과 인간들의 계보와 수많은 상징물들로 얽히고설킨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실타래를 열두 올로 가닥을 잡아 풀어낸다. 이윤기는 그 열두 올을 슬며시 내 손에 쥐어주면서 ‘상상력’이라는 바퀴를 달고 페달을 힘껏 밟으라고 격려해 준다. 내 뒤로 열두 색깔로 현란하게 늘어서는 실타래들. 이윤기가 ‘미궁’이라고 비유한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 길을 잃어도 걱정 없다. 언제든 그 실타래들의 끝을 쥐고 되짚어 나오면 되니까.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의 장점은 더 이상 신화 읽기를 지겨워하지 않게 되고, 신화의 상징성 찾아내기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이윤기는 신화 속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상징들 중에서 12개의 상징을 찾는 방법을 그의 꾸밈 없는 입담으로 보여준다. 이를테면 ‘잃어버린 신발’을 매개로 줄줄이 엮여 나오는 모노산달로스 이아손, 테세우스의 신표에서 달마대사의 짚신,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콩쥐의 꽃신, ‘나무’를 매개로 다룬, 월계수로 변한 다프네를 사랑한 아폴론과 데메테르 여신의 참나무를 쓰러뜨리고 걸린 들린 에뤼시크톤 이야기, ‘뱀’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왕뱀 피톤, 멜람포스에서 폴리이도스에 이르는 예언자 집안,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사자인 흙빛 뱀 이야기, ‘화수분’을 상징하는 바우키스와 필레몬의 술병, 아켈로오스의 풍요의 뿔, 프리아포스의 성기, 디오니소스의 팔로스, 성탄절에 걸어놓는 커다란 양말 이야기 등은 단발적으로 흩어져 있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주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별다른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흥미로웠을 뿐만 아니라 참신하게 다가오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것 외에는 더 이상 아무런 열쇠도, 상징도 찾을 수 없었다. 이 책이 구전의 특성상 무수한 이본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집대성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다채로운 도판보다 좀더 참신한 상징을 찾는 데에 여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심통이 났다. 이윤기의 상징이 정통성을 지니길 바라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만의 상징이 내게는 더 커다란 상상력의 바퀴를 달아줄 테니까. 그리스 로마 신화를 내가 자신 있게 발견한 상징을 바탕으로 읽어야 온전히 내 것이 될 테니까. 이윤기는 ‘신화학자’라는 칭호보다 ‘신화 이야기꾼’이라는 칭호가 훨씬 잘 어울리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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