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국의 딸들 - 나남창작선 29 나남신서 105
박경리 지음 / 나남출판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박경리의 《김약국의 딸들》은 조선 말기에서 한일 합방 전후의 통영을 배경으로 3대에 걸치는 가족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가족사 소설이다. 김약국(김성수) 가족의 비극은 비상을 먹고 죽은 생모 숙정과 살인을 한 아버지 봉룡의 운명에서 비롯된다. "비상 묵은 자, 자손은 기르지 않는다 카든데……"라는 주문과도 같은 말은 이 소설의 운명적인 비극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구실을 한다. 박경리는 김약국 집안의 운명적 비극에 의한 끊임없는 궂은일들 가운데 한 번은 좋은 일도 있을 법하건마는, 김성수의 죽음까지 겹치는 불운 속에 독자를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김성수의 비정함과 냉정함은 이러한 운명적 결함의 고립과 소외에서 온 성격이다. 김성수는 어떠한 의지도, 집착도, 욕심도 보이지 않는다. 김성수 생애 유일한 자발적인 의지는 사촌누이 연순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었다. 그러나 그뿐, 김성수는 늘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모든 일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가족들에게 닥치는 불행에도 동요되지 않는다. 그는 다분히 운명적 비극에 맞서기보다는 체념하는 듯하지만, 운명과 닿아 있는 자신의 비극을 묵묵히 견디며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실댁의 비극은 용옥의 비극과 함께 가장 큰 슬픔과 애처로움을 들게 한다. 딸들에 대한 그녀의 꿈은 과부가 된 첫딸 용숙을 시작으로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그래도 한결같이 딸들의 허물을 끌어안으려는 모성은 그녀로 하여금 거듭되는 비극 속에서도 더욱 모질게 생명에 대해 집착하게 하는 동시에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다. 김약국 집안의 비극의 내림은 과부가 된 용숙으로부터 시작된다. 의사와의 불륜으로 영아 살해 혐의를 받아 경찰서에 구류되기도 하는 용숙은 물질에 대한 끈질긴 집착을 보인다. 이러한 물욕은 용숙을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이해타산적인 성격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용숙의 성격은 비극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끝끝내 살아남게 한다. 하지만 이런 용숙의 생명력은 건강하지 못하며, 김약국 집안의 비극을 철저히 무시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용빈은 가장 건강하고 긍정적인 인물이다. 그녀는 집안과 자신의 비극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며 이지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지닌 유일한 인물이다. 이러한 용빈의 적극성과 진취성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파혼과 집안의 비극적인 일들을 끝까지 지켜보며, 김약국 사후 용혜와 함께 통영을 떠남으로써 김성수 대에서 거두어들인 운명적 비극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용란은 가장 본능적인 인물이다. 용란은 한돌과의 육체관계에 대한 부끄러움도, 그런 자신의 행위로 겪는 가족들의 고통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녀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마냥 어린아이처럼 무심하고 그늘이 없으며 순수한 일면까지도 보인다. 그러나 용란의 의식 없는 행동은 한실댁과 한돌을 비명에 가게 하고, 자신은 광인이 되는 비극을 안게 한다. 용옥은 한실댁처럼 최후까지 인내와 굴종, 희생의 삶을 산다. 용란을 사랑했던 한돌을 남편으로 두었기에, 따뜻한 애정도 전혀 받지 못하지만, 용옥은 그를 헌신적으로 대할 뿐이다. 이러한 용옥의 비극은 시아버지 서 영감의 능욕으로 정점에 달하고, 결국 배의 침몰로 한 많은 생을 마감한다. 막내 용혜의 비극은 작품에서 보이지 않는다. 달맞이꽃 같다고 표현된 용혜는 용빈과 함께 통영을 떠남으로써 김약국 집안의 운명적 비극에 막을 내리고, 새로운 출발의 역할을 맡는다.

이 소설에서 특히 돋보이는 점은 작가의 등장인물에 대한 아낌이다. 박경리는 중요 인물의 순위를 따지기 이전에 모든 인물을 애정으로 대하고 있는 듯하며, 폭넓고 깊게 만들고 있다. 또한 운명에 의해 결정되는 고대의 비극도 잘 형상화 해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서양 선박의 출현이나, 한일합방, 광주학생운동, 구 지주층의 몰락(김성수)과 신흥자본주(정국주)의 성장 등을 거론하고 있지만 이러한 관심들이 사회, 역사적인 측면까지 깊이 있게 나아가지 못한 한계점도 보인다. 즉 이러한 것들이 일반화되기보다는 특정한 한 가문의 성쇠에 국한되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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