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하루 종일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회사 파티션 너머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누가 볼세라 숨겨가며 이승우를 읽었다.

이승우는 개인적으로 아끼는 작가이지만,

왠지 이승우를 읽을 때는 잘 이해해보자는 마음부터 다지게 되는데

<사랑의 생애>는 그런 긴장 없이 재미나다.

 

이야기는 어느새 사랑에 뒤따르는 '질투'에 이르렀고, 줄리언 반스의 그레이엄 헨드릭이 떠올랐다.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에서 그레이엄 헨드릭은 전직 단역 배우였던 아내의 과거에 집착하면서 질투의 끝장을 보여준다. 그게 다소 과한 측면이 없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하게도 되는데, 질투로 폭주하는, <사랑의 생애>에 따르면 질투로 폭주할 수밖에 없었던 그레이엄의 심리를 이제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의심하는 사람은 무엇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의심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공존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자기 의심이 오해에서 비롯한 것임이 밝혀져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왜냐하면 의심하는 동안은 몹시 괴롭고 혼란스러우니까)과 자기 의심이 근거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져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정당성을 확보하기를 바라는 마음(왜냐하면 의심하는 자기에 대한 확신, 근거 없이 의심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의심하는 동안의 고통과 혼란을 일정 부분 상쇄시켜준다고 믿으니까)이 그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고 동시에 계속해서 의심에 지배당하기를 바란다. 의심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면서 더 의심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확인하려 한다. 그 두 가지를 동시에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확인되면, 나머지 하나는 확인되지 않는다. 두 가지 모두 확인되지 않을 수는 있지만(믿기에도 믿지 않기에도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 있는 법이니까), 두 가지 모두 확인될 수는 없다. 상반된 두 가지 욕구를 동시에 충족하기를 원하는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길은 없다. 의심하는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만족이 아니라 의심이기 때문이다. 의심하는 사람의 의심은 확신하는 사람의 확신보다 언제나 확고하다.

 

의심하는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말하는 사람의 말을 다르게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무슨 말을 해도 다르게 해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질투는 사랑의 크기가 아니라 그가 느끼는 약점의 크기를 나타내 보인다. 사랑해서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약점이 있어서 질투하는 것이다. 맹렬하게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열등감을 느껴서 맹렬하게 질투하는 것이다.

 

질투는 연인의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까지, 모든 영토를 삼키고 불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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