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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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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 보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제 아무리 부자이거나 가난하거나, 특별하거나 평범한 사람이라도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문제가 아닌 어쩔 수 없는 파괴적인 순간은 사람의 모든 것을 바꾸어놓는다. 삶 자체가 무너진다. ‘이것만 아니었으면 내 인생은 훨씬 나았을 텐데, 내 잘못도 아닌데 왜 이렇게 된 거지’라는 생각은 아마 죽을 때까지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럴까? 편혜영의 『홀』은 한순간의 사고로 삶이 무너진 한 남자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긴장감 넘치게 들려준다.

오기는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이 부셨다. 강원도로 여행을 가던 길, 심야의 고속도로. 앞차를 확인하지 못하고 가드레일을 들이받아 추락해 대형사고가 일어났다. 아내는 죽었고 자신은 스스로 통제조차도 할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되었다.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의 사망으로 결혼 당시 오기의 식구는 아내밖에 없었다. 장모는 딸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오기를 정성껏 간호했다. 경찰에게 받은 결혼반지를 갖고 있겠다고 허락을 구하며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을 보며 오기 역시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오기는 집으로 돌아왔다. 무리해서 산 타운하우스, 아내는 이사 오던 날 집 안의 모든 불을 켜놓고 미래를 축복했다. 자랑스럽게 가꾸었던 집의 정원이 엉망이 된 것이다. 화려했던 정원의 식물은 죽거나 시들었으며 마치 자신의 모습 같았다. 빠졌던 기억이 하나씩 돌아왔다. 행복해 보이기만 했던 집과 아내와의 관계는 기억 속에서 이면을 드러낸다. 화려했던 정원과 아내가 정원 가꾸기에 몰두했던 이유, 불륜에 대한 의심, 한 인간이 속물이 되는 것에 대한 아내의 관찰기, 오기의 삶에는 이미 충분한 홀이 생겨 있었다. 그리고 현재, 장모의 변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오기를 두렵게 했다. 무기력한 자신에게 주변의 변화는 너무나도 공포스러운 것이다. 미래를 약속하던 타운하우스가 덩굴식물에 뒤덮인 감옥 같은 족쇄가 되었다. 장모가 파고 있는 마당의 흉물스럽고 큰 구멍은 무얼 위한 것일까. 물고기를 키우기 위한 것일까? 오기는 마침내 그 구멍에 누웠다. 인생은 한순간에 뒤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지도 모르겠다. 자신 때문에 생겼을 어두운 구멍, 그리고 그때가 돼서야 눈물을 흘렸다.

소설의 이야기가 주는 매력은 이런 것이다. 평범한 가정이 불의의 사고로 무너지고 굳은 의지로 고통을 극복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여야 한다. 최소한 나에게 이런 이야기는 소설로서는 영 매력이 없다. 편혜영의 이야기는 그래서 흥미롭다. 대형사고로 아내를 잃고 눈밖에 깜빡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는 자신의 몸, 상황은 끔찍하고 절망스럽다. 하지만 오기의 삶은 어떤 식으로든 무너졌을 터였다. 절망스러운 현재의 모습과 오기의 이면의 삶의 모습을 교차하며 보여주며 사고가 아니었어도 무너지고 말았을 인생을 그려냈다. 작위적인 느낌이 없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상황이 두렵다. 그래서 오기는 구덩이 속에 누웠을 때 오히려 편안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 오기는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p.209)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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