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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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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 내지는 편견 때문인데 지금까지 읽었던 꽤 많은 여성 작가의 이야기들이 개인적이거나 내밀한 이야기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를 파내어 피가 흐르면 다시 핥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좋아하지 않는다. 혹독하게 말하면 경험하지 않는 사소설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작가가 만들어놓은 스스로 존재하는 듯한 세계면 충분하다. 이 세계 속에 나도 함께 숨 쉬고 있어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 몰입을 방해한다. 보고 싶지 않다. 쉬운 예를 들자면 여행 프로그램에서 타지의 사람들 그대로를 보는 것은 좋지만 여행가가 개입해 멋지다느니 슬프다느니 하는 게 싫은 것이다. 최정화의 첫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은 어떤 이야기일까. 제목을 보니 불안해진다. 얼마나 은밀한 이야기일까. 총 열 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경험하게 되는 미세한 떨림에 관한 이야기다. 그 작은 떨림이 얼마나 큰 균열을 가져올 것인지, 그 떨림이 얼마나 두려울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구두」에는 삼 주간 집을 비우는 동안 일을 맡아줄 도우미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낡아빠진 구두를 신고 들어온 도우미는 내 집을 자신의 집인 것처럼 만족스럽게 웃었고 주인공은 불안을 느낀다. 위축되고 머뭇거리며 일자리를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러 온 듯한 여유로운 모습의 도우미를 보는 불안한 기분, 도우미가 남긴 구두는 무슨 의미였을까?


「틀니」의 남편은 아내에게는 완전무결한 존재였다. 180이 넘는 키에 헬스 클럽에서 몸 관리를 하는 남편이 부유한 집 자식처럼 보인 것에 비해 왜소하고 소박하고 유행에 뒤떨어진 듯한 아내는 가난의 냄새를 풍겼다. 큰 사고 후 틀니를 끼게 되어 우울하고 상심해 있는 남편에게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격려를 해준 아내 덕에 남편은 다시 쾌활해졌다. 틀니를 끼고 고생하는 남편에게 집에서는 빼고 편하게 있으라는 아내,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틀니를 뺀 남편은 이제 틀니가 있어도 입술이 말려 들어간 괴물처럼 보였다. 잠자리도 싫어졌고 그와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완전무결한 그는 이제 괴물이 되었다.


「파란 책」의 그녀는 새 집에 이사한 후 인테리어에 열을 올리고 집 안을 이것저것 바꾼다. 책장이 생긴 그녀에게는 꽂을 책이 너무 얇은 것밖에 없었다. 인테리어로 사용할 책을 찾기 위해 서점에 간 그녀. 책의 제목은 상관없지만 서점 주인에게 티를 내지 않는다.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며 그녀가 원한 것은 두꺼운 파란 책. 철학 코너에서 알맞은 책을 발견해 꺼낸 것은 하이데거의 책. 인테리어에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지만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이 책의 내용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는 책을 읽으려 한다.


다행스럽게도 최정화의 소설은 만족스러웠다. 여성 작가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섬세함으로 읽혔다.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이 주는 미세한 떨림이 주게 될 변화를 지켜보는 느낌은 흥미롭다. 살다 보면 사소한 것 하나로 인해 타인에 대한 감정이 변화하는 경험은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나의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주위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불안함과 열등감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무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게 된다. 그 계기 역시 특별한 것이 아니다. 자그마하고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다. 거대한 균열을 만들 수 있지만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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