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개의 황금 열쇠 초등학생이 보는 그림책 3
피터 시스 글 그림, 송순섭 옮김 / 사계절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나도 눈을 감으면 내가 어릴 적 열심히 뛰어 놀던 고향 길이 환하게 펼쳐진다. 서울에서 한번 풀리기 시작한 고향 길의 끝은 우리 집 석류나무 앞이다. 내 고향은 워낙 궁벽한 경상도 촌이라 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기가 어려웠다. 즉 나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객지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런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유난히 타향 의식이 강한 것은, 엄마 젖을 충분히 먹지 못한 아기처럼 내가 유난히 엄마의 품을 파고드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내 가정을 알콩달콩 이루었음에도 고향을 떠올리면 금방 외지인, 이방인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그래도 나는 하늘이 두 쪽이 나는 한이 있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커다란 석류나무 밑을 지나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어찌 해도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라면……. 이 책의 작가인 피터 시스의 고향은 체코이다. 지금이야 동유럽 국가들의 전체주의 정권이 무너졌지만, 체코가 체코슬로바키아였던 시절, 피터 시스는 망명의 길을 선택했다. 《세 개의 황금 열쇠》에는 그가 살아서도 죽어서도 결코 돌아가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그의 조국, 그의 고향 체코 프라하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의 그리움은 열기구를 타고 순식간에 체코 프라하에 불시착한다. 그곳에서 그의 고향 집 앞까지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 길들, 낯설지 않은 골목들, 옛 추억들 사이를 더듬어 그의 그리움이 도착한 곳은 그의 옛집이다. 그의 가족들과 도란도란, 오순도순, 속닥속닥 모여 살던 곳. 하지만 그의 그리움은 세 개의 자물쇠 앞에 멈칫한다. 오랫동안 떠나 있던 고향, 이제 그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 갖고는 그의 옛집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그는 세 개의 자물쇠에 꼭 맞는 세 개의 열쇠를 찾기 위해 어릴 적에 길렀던 추억 속의 고양이를 따라 나선다. 고양이는 그가 뛰어 놀던 거리거리를 지나 그의 특별한 추억이 깃든 세 장소로 그를 이끈다. 고양이를 천천히 뒤따르며 옛 기억과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씩 되살려내는 그와 그런 그를 느긋하게 기다리는 고양이, 그리고 그가 지나는 자리마다 건물의 텅 빈 유리창에 나타나는 사람의 얼굴. 그는 조금씩 그의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프라하를 깨우기 시작하고, 프라하는 서서히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이런 것일 테지. 추억을 불러낸다는 것은.

고양이를 따라간 세 장소, 도서관과 어느 정원, 시계탑에서 그는 프라하에 얽힌 전설을 한 가지씩 읽고 그의 옛 집으로 온전히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황금 열쇠 세 개를 얻는다. 그 세 곳은 그만의 특별한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지만, 모두 천년고도 프라하의 아름다운 문화유산들이다. 프라하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데, 그중에서도 그가 어릴 적 즐겨 찾던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도서관, 프라하 성의 정원, 천문 인형 시계탑이 그의 신비롭고 몽환적인 그림 속에 추억과 그리움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도서관의 사서와 정원의 황제를 눈여겨보라. 16세기에 체코에서 활동했던 화가이자 내가 좋아하는 화가이기도 한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그림 〈사서〉와 〈베르툼누스〉를 모방한 것이다. 이 외에도 그는 이 동화책의 구석구석에 프라하의 상징물들을 가득 숨겨두고 있다고 한다.

내가 체코 사람이 아니니, 내 고향이 프라하가 아니니 그 상징물들을 알아볼 길이 없지만, 그의 향수는 나의 향수와 닿아 있다. 그는 말한다. “역사를 돌이켜볼 때 사람들은 도시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열쇠를 건네주고는 하였다. 두 개는 특별한 손님에게, 세 개는 아주 특별한 손님에게 주었다.” 고향, 추억의 장소, 잃어버린 공간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아주 특별한 손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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