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천명관 지음 / 창비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예술 분야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작품이 크게 성공하고 끊임없이 따라붙는 성공작의 꼬리표는 작가에게 힘보다는 부담을 주는 것이 사실일 것이고, 과거 사례만 보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물며 적지 않은 나이에 낸 첫 작품이 그렇다면 어떨까. 천명관에게 『고래』는 그런 작품일 것이다. 문단과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그야말로 혜성같이 등장한 천명관에게 『고래』는 뛰어넘기 힘든 꼬리표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단편집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장편 『고령화 가족』에서도 천명관의 이야기는 여전했지만 『고래』를 기준점으로 삼은 독자들의 눈높이에는 부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명관을 『고래』에서 놓아주어야 하는 것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들일 것이다. 『고래』가 이야기의 정점이었을 뿐 천명관은 자신의 목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있다. 그리고 7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단편집인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는 어떨까?

십일 톤 덤프트럭을 몰며 지갑에 두툼히 돈을 넣고 다니며 한때 잘 나가던 경구가 도박에 빠져 아내와 이혼을 하고, 트럭까지 빼앗기고 찾아든 곳은 냉동 창고 노가다였다. 일을 끝내고 얻은 꽁꽁 언 냉동 칠면조 덩어리에 경구는 어쩔 줄을 모른다. 돌처럼 딱딱한 칠면조 덩어리는 삶아먹는 건지, 몇 시간을 삶아야하는지도 모른다. 하루 일당만큼 값비싼 칠면조이지만 경구에게는 불길한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외상값을 닦달하는 노래주점 최 사장과 실랑이를 하다 칠면조 덩어리로 최 사장을 내리친다. 당구장 앞에 세워진 남의 트럭을 타고 달리며 조수석에 놓인 칠면조 덩어리를 보고 아내에게 내밀며 피식 웃는 아내를 상상한다. 아이와 함께 다리를 뜯는 모습을 상상하며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그래, 까짓것. 거칠게 한판 살다 가는 거다. 인생 뭐 있나? 백반 좀 먹고 빠구리 좀 치다 가면 그뿐이지.” (p.110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


다른 단편들도 다르지 않다. 밥을 먹고 소화제를 먹고, 자기 위해 수면제를 먹고, 섹스를 위해 비아그라를 먹고 비타민제를 먹어야 하는 화학적 인생들. 그럼에도 보형물을 넣어야 되는 물리적 인생이 아니라고 자위하는 사람들. 이 단편집의 등장인물들은 무언가를 잃고, 삶의 막다른 곳에 다다른 사람들이다. 삶의 목표는커녕 하루하루가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독히도 우울하고 어둡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건지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어디로든 향하고 있다.

“얘야, 잊지 마라. 사는 건 누구나 다 매한가지란다. 그러니 딱히 억울해할 일도 없고 유난 떨 일도 없단다.” (p.182 우이동의 봄)

작가의 첫 번째 단편집인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이 책은 7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닮은 듯 다르다. 전 단편집이 외국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부조리와 아이러니로 가득 찬 세계에서 어쩔수 없는 개인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는 우리의 이야기를 조금 더 진지하게 그려냈다. 하지만 두 단편집 모두 녹록치 않은 하루하루의 삶을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비극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닮아 있다. 본 단편집이 더 무겁고 덜 유쾌한 느낌이 드는 것은 우리 삶의 모습과 더 닮아 있기 때문일까. 우리 삶이 왜 이렇게 우울해졌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교과서에나 어울릴 법한 허울 좋은 말들인 ‘노력’, ‘정직’이 이 사회에 통용되기나 할까?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엉뚱하고 극단적인 방법뿐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은 삶은 더욱 비극적으로 만든다. 우리 삶은 피곤하고 피폐해졌다. 지지고 볶던 마누라, 싸우고 집을 나가도 슬그머니 돌아와 있던 마누라와 이혼한 지 칠 년이나 지나버린 것이다.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렇게 됐다(p.121).”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고, 뭐 하여간 그렇게 된 거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우리 대신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