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무레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블루엘리펀트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유행이라는 게 굉장히 빠르구나 싶을 때가 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디어 쪽에서 걸핏하면 나오던 말인데 요샌 듣기도 힘든 말이 있다. 바로 힐링이라는 말이다. 힐링을 하도 해서 이제 모든 것들이 다 치유라도 된 것인지, 아니면 힐링이라는 말 자체가 벌써 촌스러워졌는지 이 말을 쓰는 것을 찾기가 힘들 정도다. 이렇게 힐링은 끝이 났지만 잔잔하게 사람을 치유해 주는 것은 여전히 많다. 그것이 좋은 날이건, 좋은 장소이건, 좋은 음식이건, 좋은 동물이건 말이다. 잘 알려진 『카모메 식당』의 무레 요코는 이런 이야기들을 제대로 만들어낼 줄 아는 작가다. 특히 여성의 소소한 일상을 잔잔하게 잘 그려내는데 작가의 이야기를 음미하다 보면 제대로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마구잡이로 유행했던 싸구려 힐링이 아니다. 제목부터 살짝 느슨하게 만들어주는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이라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오십대의 여성 아키코는 회사의 부당한 인사와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회사를 퇴사하고 어머니가 경영했던 시끄러운 술집을 개조해 자신만의 가게를 만들고 빵과 수프가 있는 작은 가게를 연다. 주위를 떠돌던 길고양이도 가게에 눌러앉게 되고 타로라 이름지어준다. 작고 조용한 가게지만 살다 보면 자신을 둘러싸고 여러 일들이 일어나지만 아키코는 여전히 하루하루를 빵과 수프를 만들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가끔 별것 아닌 것에 기쁘기도 하고 편안해지기도 한다. 이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아니 무레 요코의 이야기가 마찬가지라고 해야겠다.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흔하디흔한 이야기에 문장 역시 이야기만큼이나 느긋하다. 흔해빠진 이야기지만 흔하지 않다. 오십대 중년 여성의 이야기, 특히 소설이라면 가정의 갈등, 자아를 찾기 위한 필사적인 이야기, 중년의 삶의 문제들 같은 빡빡한 이야기를 생각하기 쉽다. 문제를 제기하고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있어야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가 스님이고 자신은 사생아였고, 어머니는 술을 파는 가게를 했다면 대부분의 소설은 주인공의 그런 삶에 대한 이야기가 주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러지 않았고 오히려 잔잔하고 평범한 삶의 나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삶은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중년이 된 아키코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직장에서 해고된 것도 아니고 자신을 버린 스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아니고 자신의 이복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아닌 자신과 함께한 길고양이 타로의 죽음뿐이었다. 이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다. 소설로 쓰일 만한 이야기 대신 그냥 일상을 덤덤하게 그려내는 것. 일본 작가 특유의 감성인지 이런 이야기들이 일본 소설에는 많이 등장하는 편이고 그게 우리나라 소설과는 꽤 다르다. 특히 여성작가라면 더 그렇다. 참고로 『카모메 식당』은 영화로,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은 드라마로 제작되어 있으니 책을 보시고 드라마도 즐기시길 바란다. 두 작품에서 출연하는 배우도 비슷하고 무엇보다 그 느슨한 느낌을 영상으로 보는 것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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