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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인간과 자연에 대한 아포리즘
에릭 호퍼 지음, 정지호 옮김 / 이다미디어 / 2014년 2월
평점 :
품절
아포리즘(aphorism)―신조, 원리, 진리 등을 간결하고 압축적인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 금언(金言), 격언(格言), 경구(警句), 잠언(箴言) 따위를 이른다. 흔히들 말하는 인생의 진리와 같은 짧은 경구를 의미한다. 흔히 잘 알려진 아포리즘이라면 히포크라테스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나 파스칼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등과 같은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속담이나 경구 같은 것도 아포리즘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창작의 주체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아포리즘과 다르다. 이것은 작지만 매우 큰 변별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집단의 경험으로 만들어진 경구나, 잠언 등이 매우 보편적인데 반해 아포리즘의 경우는 개인적이고 내밀하다. 이것은 바로 개인의 경험과 사유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아포리즘은 창작자의 삶에 무게가 실리게 된다.
『인간의 조건』은 평생을 길 위에서 일하며 사색한 미국의 사회철학자 에릭 호퍼의 두 번째 철학적 아포리즘의 결과물이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사색의 결과물인 이 책은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본질과 조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릭 호퍼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불완전한 것이라는 것, 창조에 대한 욕망 역시 인간의 불완전성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 그 불완전성을 메우기 위해 사색과 성찰을 한다고 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자연은 완성되고 완전한 피조물이기 때문에 무언가 변화할 필요 자체가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인간은 태생부터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완성을 거쳐 자연의 가장 강력한 적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창조는 곧 그 불완전함에 있다. 이 말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의 강렬한 대비인 동시에 인간이 인간인 이유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인간의 불완전성은 완성된 것으로 나아가려는 욕망 이외에도 다른 것에 눈을 돌리게 한다. 사치, 탐욕, 분노 등과 같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그대로 드러내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인간이기 때문에 완전함을 향해 가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완전한 상태가 될 수 없기 때문에 평생을 불완전함 속에서 고민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자연 속에 속해 있지만 자연의 실수로 비롯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은 길지 않은 글귀에 에릭 호퍼 자신의 삶과 생각을 녹여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자신에 대해, 삶에 대해 생각할까. 애초에 그런 시간, 아니 그런 생각 자체를 잊고 살지 않을까. 자신이 만들어 낸 아포리즘은 어떤 것일까를 생각해본다. 나는 나의 삶을 얼마만큼 고민하고 있을까.
“언어는 질문을 하기 위해 발명된 것이다. 답변은 소리나 몸짓으로 할 수 있지만 질문을 말로 해야 한다. 인간이 처음으로 질문을 했을 때, 드디어 인간성이 완성되었다. 사회 침체는 답변이 부족할 때가 아니라 질문을 할 충동이 결여될 때 나타난다.” (132p)
“인간사에 예측 불가능성이 내재하는 이유는 주로 인간적 과정의 부산물이 생산물보다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74p)
“우리는 홀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일까? 혼자 있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19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