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 숍 오브 호러즈 10 - 완결
아키노 마츠리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미국 차이나타운의 뒷골목 깊숙이 자리잡은 수상한 펫숍 Count D. 그곳에 더 수상한 D백작이 나타났다. 이 음울한 이니셜 D는 D백작의 존재성을 압축해 주는 알파벳이다. 또한 D는 『Petshop of Horrors』 전체를 지배하는 알파벳이기도 하다. D로 시작되는 제목의 이야기 40편은 D로 시작되는 단어 Death(죽음), Dark(어둠), Danger(위험), Devil(악마), Destiny(운명) 등등, 그리고 Desire(소망)의 지배를 받는다. 이 단어들이 모두 모이면 D백작의 정체성이 형성된다.

D는 처음 ‘백작’의 작위를 받은 조부 D백작으로부터 3대째에 이르는 ‘신관’의 후예이다. D의 일족은 먼 옛날 중국에서 살았던 종족으로 동식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수의 신탁을 전하기도 한 신관들이었다. 중국 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일족이 멸종될 위기에 간신히 살아남은 단 한 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D백작이었다. 그때부터 3대 D에 이르기까지, Count D를 거점으로 인간에 의해 고통당하고 멸종한 동물들과 함께 결탁한 복수를 해왔다.

인간에 대한 D 일족의 복수는 냉정하고 준엄했다. D는 Count D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희귀한 애완동물을 권해 주는데, 의문의 살인 사건이 꼭 일어난다. D는 인간에게 애완동물을 팔 때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금기를 먼저 알려준다. 그 금기를 지키지 않아서 일어나는 어떤 불미스러운 일도 Count D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면서.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쪽은 언제나 인간.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D가 늘 판도라의 상자를 열 수밖에 없는 인간의 호기심을 부채질하는 금기를 제시하니까. 뭔가 하나씩은 결여된 인간들은 D가 던지는 미끼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D가 파는 애완동물은 모두 하나같이 매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므로. D는 그들의 등 뒤에 서늘한 한 마디를 던진다. “아무쪼록 오랫동안 귀여워해 주십시오.”

2권까지 『Petshop of Horrors』는 공포 만화답게 잔인하고 끔찍하며 괴기스럽기 그지없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주로 인간에 대한 복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인 형사 레옹 오르콧이 등장하면서 복수로 인한 공포 분위기는 많이 누그러진다. D와 레옹의 사이가 달콤한 케이크와 차 한 잔으로 살가워지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조화와 공존에 치중하며 다소 부드러워진다. 철저히 동물의 입장을 대변하는 D와 인간의 입장을 대변하는 레옹의 갈등도 시종일관 첨예하게 대립되지는 않는다. D를 감시한다는 명목하에 제집 드나들듯 Count D를 들락거리며 D의 만찬과 티타임을 함께 즐기면서 D와 레옹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화해의 몸짓을 코믹스럽게 연출하기도 한다. 따뜻한 웃음이 지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아기자기한 분위기는 어느 날 레옹이 D에게 자기 동생 크리스를 덜컥 맡기면서 한층 고조된다.

개인적으로는 말을 잃은 크리스와 Count D에 살고 있는 동물들(크리스의 눈에는 전부 인간들로 비친다)의 이야기가 훨씬 감동적이었다. 언젠가 말을 되찾게 되는 날이면 필연적으로 떠날 인간 크리스를 Count D의 일원으로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준다. 여기에서도 배신의 역할은 크리스의 몫이다. 잃어버린 말을 되찾을 수 있도록 일깨워준 Count D의 식구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뭔가를 잃어야 자신 이외의 다른 것에 눈을 돌릴 줄 아는 이기적인 인간과, 인간에 의해 멸종되고 급기야 그 존재마저 철저히 부정되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성을 상기시키는 상상 속 동물들, 그리고 공공연히 그들의 편이라고 천명하는 D백작. ‘그러나 인간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면, 역시 너무나 인간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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