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번역된 외국 작품을 읽을 때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 분명히 우리말로 쓰인 것인데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해가 쉽지 않은 철학서나 인문서도 아니고, 번역을 거치고 편집자가 어루만진 글일 텐데도 읽기 힘든 문장을 볼 때마다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혹시나 다른 번역자에 의해 번역된 같은 책을 가지고 있다면 비교해 보라, 번역에 따라 두 책이 전혀 다른 책처럼 보일 지도 모른다. 같은 문장을 번역해도 느낌이 상반되는 경우도 있을 뿐더러 단어 하나 때문에 전혀 다른 문장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쯤 되면 문장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질 것이다. 어쨌거나 평생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알기는 힘들 터, 어쨌거나 평범한 우리들은 번역자에 평생 기댈 운명인 것이다.

이윤기라는 이름은 소설가보다 번역자로 익숙하다. 『그리스인 조르바』, 『장미의 이름』, 『푸코의 진자』 등의 작품으로 그의 소설보다 더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기는 것에 대한 에세이다.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번역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니 그는 천생 번역가인 듯  싶다. 하지만 이 번역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책을 읽다보면 쉽게 드러난다. 기계적으로 외국어를 우리말로 치환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다듬어 걸맞은 말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윤기는 ‘단순한 물리적 변화’ 아닌 ‘화학적 변화’라 이야기한다. 또한 번역가는 모든 것에 능숙해야 한다. 언어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중세 철학에서 독일제 권총인 루거에 대한 지식도 필요하다. 『장미의 이름』의 오독과 오역을 지적한 한 독자의 글은 번역가가 가진 숙명처럼 느껴진다. 자신의 번역서가 다른 나라의 것보다 못한 것을 알았을 때의 참담한 심정이 독자에까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신화에 대한 이윤기의 애착과 네 번째 장인 ‘우리말 사용 설명서’는 현재의 우리말과 그것을 바라보는 번역가로서의 시선이 느껴져 흥미롭게 읽었다.


흔하게 하는 말로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말이 절반 정도만 맞았으면 좋겠다. 번역은 온전히 창작이어서는 안 되고 죽은 언어로 글자만 바꾸어놓은 것이어서도 안 된다. 번역은 류신의 말처럼 시소게임이거나 외롭게 줄타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쪽으로 기울거나 조금만 헛디디면 그대로 떨어져 전혀 다른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원문의 뉘앙스와 맞는 역어를 찾는 시소게임, 그 중심을 잡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나같이 평범한 독자는 그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번역은 한마디로 ‘말의 무게를 다는 것’이다. 저울의 한쪽에 저자의 말을 얹고 한쪽에는 번역어를 올려놓는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