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뮈스 -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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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학교 다닐 때의 무조건적인 암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피상적인 것들만 기억에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를테면 이익의 『성호사설』이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경우인데 이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모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차라투스트라가 조로아스터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것이다. 이렇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에라스뮈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에라스뮈스라는 이름을 듣게 되면 『우신예찬』이라는 연결고리가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에라스뮈스가 누구인지, 『우신예찬』이 무슨 책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정확히는 에라스뮈스가 아닌 에라스무스라는 기억이겠지만 말이다.

르네상스는 14세기에서 시작하여 16세기 말에 유럽에서 일어난 문화, 예술 전반에 걸친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의 재인식과 재수용을 의미하며 일종의 시대적 정신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는 예술 뿐 아니라 인간의 정신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쳤는데 종교 중심의 사상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의 사상인 인문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는 중세에서 근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인 시기였지만 인간의 정신에는 그 어떤 것보다 충격의 시기이기도 했다. 에라스뮈스는 이 폭풍 같은 시기에 신본주의의 경직된 사고방식을 시정하려 함으로써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이 책은 에라스뮈스의 평전으로 그의 삶에서 사후의 평가까지를 보여준다.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에라스뮈스의 출생부터 시작한다. 로테르담 사제와 의사의 딸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 에라스뮈스는 어린 시절을 수도원에서 보냈다. 에라스뮈스는 라틴어에 몰두했으며 시인에 대한 꿈을 키웠다. 신부 서임을 받고 주교의 비서로 보내던 그는 이후 파리대학에서 신학연구에 몰두한다. 에라스뮈스는 『격언집』과 『대화집』 등의 저작을 통해 고전정신을 의욕적으로 유통하려 했다. 이후 『우신예찬』은 이런 에라스뮈스 인본주의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하다. 『우신예찬』을 통해 유익한 어리석음이 진정한 지혜라는 것, 이에 반해 망상에 빠진 지혜는 완전한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이 책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상식적 풍자로 경쾌한 필치를 보였으나 면죄부, 기적에 대한 어리석은 믿음, 수도사의 질투 등과 같은 기성 종교에 대한 비판도 포함시켰다.


“에라스뮈스가 가는 길은 중도 또는 중도라고 보는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코 타협자가 아니었다.”―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에라스뮈스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양쪽에서 비난을 받았다. 개혁의 대상과 개혁의 주체 모두에게 비난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양측 모두 에라스뮈스를 거부할 수 없었는데 그와 같은 온건하고 지적이며 중도적인 세력들은 종교적 증오를 뛰어넘는 완충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에라스뮈스는 타협이 아닌 보편적인 자비로움을 외친 인문주의자였으며 역사의 흐름 속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아닐 지라도 광기로 얼룩진 중세의 혼란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자 애쓴 고독한 인문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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