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이리나 레인 지음, 강수정 옮김 / 예담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이름 : 안나 K(결혼 전 이름 : 안나 로이트만). 나이 : 서른여섯. 직업 : 출판사 해외 판권 부서. 취미 : 독서. 이상형 : 자신을 소설 속 낭만적인 여주인공으로 만들어줄 히스클리프 같은 작가.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프로필이다.

이 책은 제목만 들어도 어떤 소설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안나 K, 특히 K라는 이니셜은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강력하게 환기한다. 맞다, 이리나 레인은 『안나 카레니나』를 현대 뉴욕이라는 시공간으로 옮겨와 대놓고 이야기의 커다란 얼개를 톨스토이에게서 빌렸다. 이리나 레인의 안나도 톨스토이의 안나와 같은 행보를 따른다. 그렇다고 뻔한 이야기라고 치부하는 것은 성급하다. 사람 난 이래 세상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이야기란 없을뿐더러 ‘안나’는 슬픈 일이지만 무수한 시공간에서 무수히 태어났고, 태어나고, 태어날 것이다. 모두 사회적인 제약과 인간적인 한계를 어찌하지 못해 한길로 내몰리겠지만, 그럼에도 무수한 안나들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새로운 이야기로 퍼뜨린다. 이리나 레인의 안나도 무수한 안나들과 닮았으되 또 닮지 않았다.

『안나 카레니나』와 비교하자면, 일단 소설의 배경이 19세기 말 러시아 귀족 사회에서 21세기 현대 뉴욕의 러시아 이민자 사회로 바뀌었다. 당연히 새로운 환경에 맞춰 직업, 성격, 취향, 취미, 가족 관계 등 인물들의 세부적인 특성이 다시 부여된다. 안나 카레니나 역의 안나 K에 대해서는 이미 대충 이야기했고, 알렉세이 카레닌 역의 알렉스 K는 50대 초반의 유능한 사업가로 정숙하되 자신에게만 관능을 드러내는 아내를 원한다. 전통적인 관습에 충실하고 남의 이목을 신경 쓰는 그는 젊은 시절에 달리기에 열중했으며 예술품을 수집해 과시하는 것을 좋아한다.


알렉세이 브론스키 역의 데이비드 주커먼은 창작을 강의하는 20대 중후반(많으면 30대 초반)의 계약직 겸임교수로 독서와 글쓰기가 취미이며 소설을 써서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어 한다. 그는 어느 정도 낭만적이고 어느 정도 열정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별안간 달아올랐다가 쉽게 식어버리며,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치기도 부리는 파파 보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러시아 여자들에게 사족을 쓰지 못한다.


콘스탄틴 레빈 역의 레프 가브릴로프는 20대 초중반의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약사로 전통적인 관습이 답답하게 느껴지지만 거기에서 일탈할 용기를 내지는 못한 채 영화에서 그 답을 찾으려 한다. 특히 프랑스 영화를 사랑하는 그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배우들이 이상형이다. 현실적인 속물근성과 거리를 둔 채 낭만적인 감성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키티 오블론스카야 역의 카티아 자부로프는 안나를 흠모하면서도 ‘여자=현모양처’라는 전통적인 관습에 순응하는 20대 초반의 아가씨이다. 폐쇄적인 러시아 이민자 사회 바깥의 데이비드를 사랑하게 되면서 작은 일탈을 꿈꿔보기도 하지만 데이비드가 안나에게 반해 자신을 배신하자 더욱 움츠러들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현실로 돌아와 단단히 뿌리내린다.


이 네 인물들과 안나가 엮어가는 『안나 K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는 그러므로 『안나 카레니나』와 다르다. 현대적이고 좀더 감각적이며 발랄한 현실 밀착형 이야기이다.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가 아낌없이 선물하는 “은쟁반에 놓인 초콜릿을 입힌 딸기, 싱싱하고 풍성한 모란꽃 꽃다발, 불가사리 모양의 은 펜던트가 달린 티파니 목걸이, 초콜릿 수플레 속에 감춘 다이아몬드 반지” 같은 것들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어 결혼을 결심하고도 의구심을 떨치지는 못하는, 여자의 심리 묘사는 섬세하고 탁월하다.


남자가 다음 데이트에서 안겨줄 선물까지만 챙기고 나서 이별 절차를 밟아야지 마음먹지만 그다음 데이트 선물도 눈앞에 아른거려 어정쩡한 공모의 시간을 암묵적으로 흘려보낸 후 결혼을 돌이킬 수 없게 됐을 때, 여자는 그제야 그 남자와의 결혼을 선택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포기했는지 저울질해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일단 결혼하고 나면, 그 결혼으로 향유하는 풍요롭고 화려하고 안정적인 일상은 원래 누려왔던 것처럼 그 달콤함이 밍밍해지고 자신이 포기한 것은 더욱 절실해진다. 이제 그것 없이는 도저히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것과 맞바꿔 24시간 상주하는 베이비시터를 두고 세일 여부 상관없이 마음껏 신상 명품을 쇼핑하며 돈 걱정 없이 안락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런데 여자가 포기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게 반짝거리는지 생생하게 상기시키는 남자가 있다. 그는 그 강렬한 눈빛을 여자에게서 떼지 못한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결혼할 때는 그토록 재고 따지던 안나가 이번에는 무엇을 잃을지 저울질하지도 않은 채 앞뒤 없이 알렉스와 아들을 두고 데이비드에게 간다. 물론 알렉스와 데이비드를 비교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알렉스도 근사하다. “그가 그녀의 우비를 받아 옷장에 걸고, 옷걸이가 마치 그녀의 목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정하게 스카프를 늘어뜨리는 모습. 세르주의 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번번이 공갈 젖꼭지를 들고 나오는 버릇. 받침대까지 단정하게 받쳐놓은 화장대 위의 물 한 잔. 잠자기 전의 입맞춤은 더 이상 뜨겁지 않아도 여전히 다정했고, 폭 끌어안는 포옹, 등에 쓸리는 수염의 기분 좋은 느낌”은 여전히 안나의 가슴을 뛰게 한다. 하지만 안나의 요리를 맛도 보지 않은 채 소금부터 찾는 습관, 잼을 듬뿍 떠서 흘러넘치도록 빵에 바르는 모습, 기타 등등은 점점 참을 수 없어진다. 게다가 알렉스는 ‘작가’도 아니다.


사실 안나가 데이비드를 선택한 것은 그의 꿈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시작한 문장을 이 남자가 받아서 마무리하는 바람에 남은 말을 꿀꺽 삼키는 느낌은 얼마나 에로틱한지”처럼 안나가 데이비드에게 왜 이끌렸는지 독자들을 납득시키고자 하는, 꽤 멋진 문장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어쨌든 데이비드가 작가를 꿈꾸지 않았다면 안나는 그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안나는 뮤즈가 되고 싶었다. 그녀가 불러일으킨 영감을 받아 남자가 쓴 소설 속 낭만적인 여주인공으로 불멸하고 싶었다. 뮤즈가 되고 싶었던 안나의 노력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안나에게 존 키츠의 「나이팅게일에 부치는 노래」를 바쳤던 시티뱅크의 계약직 직원에게는 문예창작 강좌까지 끊어주고 문학 인사들이 모여드는 술집에 데려가기도 했다. 데이비드가 “나는 당신과 함께 있어야 해. 당신에 대한 글을 써야 해”라고 이혼을 부추기자 안나는 대번에 알렉스 곁을 떠난다.


안나는 왜 직접 작가가 되어 자기 작품 속에서 불멸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남보다 스스로에게 의지하는 편이 더 확실하지 않았을까? 이 의문에 안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녀는 작가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했다. 하지만 작가를 사랑할 수는 있었다.” 작가적인 재능을 타고나지 못했다는 깨달음. 그 자명한 현실 앞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작가를 사랑하는 일이었다고 안나는 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것 같지만, 어쨌든 그것이 안나의 선택이었다. 꿈도 없고 낭만도 없고 돈과 속물적인 취향만 넘치는 알렉스의 현실을 벗어나 안나는 데이비드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자기 내면에서 오히려 더 생생하게 움직이는 인물들, 상황들, 신화들 앞에서 현실을 부정할 수도 있으며, 실생활보다 책을 읽을 때 그녀의 삶이 더 풍요로웠을지라도” 현실을 마다하고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판타지는 누구에게도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 안나는 따분하고 무료한 현실을 버리고, 구차하고 구질구질한 현실로 들어갔을 뿐이다.


데이비드는 정작 뮤즈가 되어주겠다고 안나가 그의 변변찮은 공간과 일상으로 밀고 들어오자 경제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부담스러워한다. 그들은 사랑했다. “몇 시간씩 입을 맞출 때도 있었건만 갑자기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하루가, 한 주일이, 한 달이 먹먹할 정도로 길어지고” 데이비드는 곧 향수 가격표를 확인하면서 “나는 당신 남편처럼 해줄 수 없어”라고 선언한다. “그 이후로 선물은 점점 뜸해지고, 식당은 점점 저렴한 곳으로 바뀌었으며, 입맞춤만 깊어졌다.” 그것도 잠시, 데이비드는 안나 때문에 “돈이 마르고” 있으니까 아무리 더워도 에어컨을 틀지 말라고, 뭐든 제발 가리지 말고 일하라고 내몬다. 소설 따위는 어디로 갔는지 알 길이 없다.


안나는 정말 데이비드를 사랑했을까? “맞아요, 나는 늘 러시아 여자들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라고 안나를 우스개 삼아 아버지와 함께 키득거리는 데이비드 곁에서 머뭇거렸던 것은, 그를 사랑해서라기보다 그때 그녀가 부여잡을 수 있는 지푸라기가 그, 특히 그녀를 주인공으로 썼다던 그의 미완성 실패작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안나가 사랑한 것은 데이비드가 아니라 사랑에 대한 환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안나는 그의 부모도, 추억도, 옛 여자 친구도, 이제껏 그의 삶을 이루어왔던 어떤 것도 궁금하지 않았다. 데이비드가 그런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 아예 귀와 마음을 닫아버렸다. 사랑으로 뜨거워졌던 시선이 어느 순간 날카롭고 또렷하고 차가워졌다. 데이비드와 사는 동안 안나가 내내 신경 쓴 것은 자신이 데이비드를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데이비드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나,이다.


안나는 여자 유혹용이 아니라 영화 자체를 진지하게 사랑하는 레프가 자신을 구원해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안나는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레프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또한 착각일 것이다. 이 소설의 결말이 바뀌어 레프가 ‘타이밍’을 탓하지 않고 용기를 낸다 한들, 사랑의 열기가 가시고 엇비슷한 일상이 이어지면 그들에게도 현실은 범속하고 속물적인 얼굴을 드러낼 테니까 말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안나가 자기 구원의 문제를 마지막까지 남에게 맡기려 했다는 점이다.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뿐이다. 그런데 말이다. 안나에 대해 결국은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해도 안나를 판단하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이성으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도 어느 순간 허방을 짚고 휘청거리며 남에게 기대고 싶어지는 것은 나뿐만은 아니겠지. 언제든 나약하게 무너질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 샘솟는다. 나에게도 누군가 연민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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