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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순간의 인문학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인문학(人文學)은 인간의 조건, 인간다움에 대한 학문이다. 흔한 분류로 문학, 역사, 철학으로 요약되며 자연과학과는 달리 사변적이고 비판적으로 접근하려는 학문이다. 굳이 학문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인문학은 인간의 삶 자체에 대한 학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쿨한 시대―그리고 배고픈 시대―에 인문학이 웬 말이냐 싶다. 인문학의 위기를 수없이 되뇌는 것은 현재 우리들의 삶이 퍽퍽하다는 반증이다. 가장 근간이 되는 학문임에도 이런저런 위태로운 상황은 인문학을 가장 필 요없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인문학은 학문적으로 접근하면 한없이 어려운 부분이 되지만 가볍게 바라보면 어디에서라도 인문학을 찾을 수 있다. 책, 영화, 음악 등은 물론이고 아침드라마나 그 중간의 CF에서도 인문학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모든 순간의 인문학』에서 한귀은은 인문학이 모든 것이라 외치는 인문학 과격주의자다. 인문학이 빛을 발하는 아주 사적인 순간들이라는 부제처럼 이 책은 심각한 이야기보다는 일상에서 드러나는 인문학에 관한 이야기다. 인문학 딜레탕트가 되자는 저자의 이야기처럼 이 책은 인문학을 심각한 대상이 아닌 가볍게 즐길 것을 권유한다. 하지만 딜레탕트의 부정적 의미처럼 독창적인 관점이나 자의식 없는 취미가 전부인 인문학에 대한 관점은 인문학의 의미 자체가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가령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남성미가 넘치면서도 섬세한 남자 주인공을 보면서 그저 감탄만 연발하는 것이 아니라 ‘아, 이 남자는 테스토스테론과 아니마를 겸비한 남자구나’라고 해석하면서 자신의 이상형을 수정하고 있을 때 우리 삶에는 인문학 감성이 매개되고 있는 것이다(프롤로그).
인문학 딜레탕트에 대한 모범적―부정적인 의미의―인 글귀로 보일 정도다. 삼촌 팬이 터프한 역할을 하는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보며 ‘에스트로겐과 아니무스를 겸비한 여자구나’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이라면 어떨까? 인문학은 어디에나 있을 순 있지만 어디에나 끼워 맞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는 지식은 삶의 온도를 데우지 못해서 저자는 인문 감성을 이야기하는데 이 ‘인문 감성’이야말로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전부가 아닐까 한다. 이 책은 솔직한 데다가 감성적이다. 미중년보다 당당한 잡놈을 이야기하며 게리 올리만을 꼽는다. 물론 남편도 잡놈이 될 수 있다는 걸 슬쩍 내비치기는 하지만. 저자는 인문학을 빌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단식, 라면, 노래방, 드라마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내비치며 인문 감성을 이야기하는데, 어쩌면 이런 것들이 요즘 같은 쿨한 시대에는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고 주위를 둘러본다면 무언가 다르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른다. 드라마 속의 미남미녀의 스테레오타입 같은 사랑 이야기에서도 분명히 인문학은 존재할 것이다. 그것이 ‘감성’뿐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