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코츠키의 경우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7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지음, 이수연.이득재 옮김 / 들녘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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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드밀라 울리츠카야의 『쿠코츠키의 경우』를 처음 보았을 때 눈길이 갔던 것은 제목이나 표지가 아닌 띠지였다. ‘2012년 제2회 박경리문학상’이라는 글귀는 외국 작가도 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박경리문학상은 한국어로 문학 활동을 한 생존 작가가 추천 대상이었지만 올해부터 해외 작가에게도 문호를 개방해 첫 수상작이 되었다 한다. 선정 이유 중 주의 깊게 볼 구절이 “그의 섬세한 펜 아래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파스테르나크 등 러시아 대문호들이 이끈 ‘구원의 미학’이 장엄하게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가족의 해체 후에 다시 재결합되는 과정을 통해 역사와 그 속을 살아가는 개인이 치유되는 구원의 이야기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냉전의 시대를 거치며 소비에트의 가족에 대한 개념은 붕괴되었으며 국가의 이념에 귀속된 작은 집단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울리츠카야는 가족을 타도해야 할 부르주아적 산물로 여기고, 개인과 가족보다 이념을 우선시하며, 이데올로기를 위해 친부를 고발하는 인물을 영웅으로 추앙했던 소비에트 시대를 가족의 가치를 붕괴시킨 ‘배반’의 시대로 보았으며 가족의 복원만이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자행하는 폭력으로부터 개인을 지킬 수 있는 ‘신성한 조직’이자 ‘사랑과 보호의 요람’이며 전후의 시대뿐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도 소외와 고독, 존재론적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보았다.

쿠코츠키 가문의 파벨은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과 어머니와의 갈등으로 가족에서 벗어나게 된다. 가문 대대로 의사였던 파벨 역시 산부인과 의사가 되고 혁명과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치료받으러 온 전쟁과부 엘레나와 사랑에 빠져 전남편의 딸인 타냐와 함께 가족을 이룬다. 타냐의 친구인 토마의 부모는 불법낙태를 받다가 죽게 되고 파벨은 토마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닌 만들어진 가족은 서로 배려하고, 싸우고 다음 세대의 가족으로 이어지게 된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서 현재 분리 독립된 러시아 연방에 이르기까지 피의 역사를 가진 나라, 미국 못지않은 다민족 국가의 나라에서 어쩌면 가족은 가장 중요한 삶의 기반일 것이다. 전후와 냉전의 세계를 구원하는 데 가장 중요했던 가족은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의 세계에서도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는 개인이겠지만 그 개인이 모여 이루는 가장 작은 집단인 가족이야말로 사회의 기반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울리츠카야가 이 절대적 가치에 집착하는 것은 자신이 본 가족이 붕괴된 국가의 위험을 몸소 경험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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