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최고의 맛 - 맛의 비밀을 찾아 떠난 별난 미식가의 테루아 탐험기
로완 제이콥슨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건 외국이건 TV를 보다 보면 절대로 빠지지 않는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음식에 관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맛집에 관한 프로그램은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데 맛집에 대한 폐해도 많아 고발 프로그램이 나오기도 하지만 먹음직스러운 음식을 보면 눈이 즐거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어디 TV뿐이랴 블로그나 게시판을 둘러보아도 음식 이야기는 빠지는 법이 없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식욕은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욕망 중 하나니 말이다.

로완 제이콥슨의 『지상 최고의 맛』은 바로 이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며 자연이 만들어내는 맛을 담은 책이다. “테루아를 알면 지상 최고의 맛과 만난다!”는 카피가 큼지막하게 눈에 띈다. 테루아란 무엇인가. 흔히 테루아는 토양과 기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것을 의미하지만 저자는 테루아의 의미를 끝없이 확장하여 자연 조건과 재배자의 열성 등 식재료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를 통틀어 테루아라 말한다. “자연은 장소마다 서로 다른 거래를 한다. 한 지역을 규정하는 바람과 파도와 빛과 생명의 패턴이 거기서 자라는 동식물 안으로 흘러든다. 그것이 테루아다.”

파나마의 커피로 시작하는 이 책은 굴, 연어와 같이 자연 그대로가 재료인 것들과 초콜릿, 와인, 치즈와 같은 인간의 손을 거쳐 음식으로 탄생하는 것도 있다. 다른 미식 관련 책들과 다른 점은 음식으로 탄생한 재료도 단순한 소개 이전에 자연적, 생태적인 근원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조건 자연 그대로의 음식만을 부르짖는 것은 아니다. 초콜릿이나 와인을 만드는 회사를 방문해 회사의 철학과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한 장이 끝나는 마지막에는 소개한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요리를 소개 해 주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독특한 점은 사진이 없다는 것이다. 간단한 삽화가 전부인데 저자의 의도가 무엇이건 간에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한 끼를 때운다고 쉽게 이야기하고 짧게는 30분이면 끝나버리는 식사일지라도 음식이 차려지기까지의 과정은 오랜 시간과 정성의 산물이기도 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자란 벼로 지은 쌀과, 배를 타고 나가 잡은 생선, 간단한 콩나물무침마저도 콩을 며칠을 키워 만든다. 이런 재료들을 삶고, 굽고, 무쳐서야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으니 먹는다는 것 자체가 시간과 정성을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 패스트푸드라는 것도 먹는 기준에서의 이야기지 재료가 만들어지는 시간이 긴 것은 매 한가지다. 최불암 씨의 나른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한국인의 밥상’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군침이 돈다. 순대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끓이는 순대국밥, 젓갈향이 가득한 김장김치, 산에서 캔 나물무침, 이것이 우리에게 익숙한 우리의 테루아다. 인간은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자연을 파괴해야 한다. 하지만 자연이 있어야 인간도 존재한다는 것은 당연할 터, 삶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 맛은 물론이거니와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으니 서글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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