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조안 해리스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비안 로셰(Vianne Rocher). 이토록 달콤하고 부드럽고 근사하게 혀를 굴릴 수 있는 이름이라니. 조안 해리스의 『초콜릿』을 읽는 동안 그 매혹적인 이름에 미혹되어 있었다. 한때 잠깐 소설이라는 걸 쓰는 흉내를 냈을 때 무엇보다 내 머리를 쥐어뜯게 한 것은 이름이었다. 인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일은 언제나 곤혹스러웠다. 아무 이름이나 막 가져다 붙일 수는 없는 노릇, 인물을 상징하되 예쁘고 세련된 이름을 욕심껏 찾아도 나중에 다시 그 이름을 불러보면 유치하고 낯간지럽고, 어딘가 모르게 그 이름에 곱게 발라놓은 화장이 덕지덕지 들떠버린 느낌이 든다. ‘비안 로셰’라는 이름은 말맛도 신비하고 아름답지만 그 의미도 충분하다. 비안의 성(姓) ‘로셰’는 익숙하다 싶었는데, 오톨도톨한 공 모양의 초콜릿을 금박지로 하나하나 감싸서 수북하게 쌓아 올린 페레로 로셰 광고 때문이었다. 그런데 로셰(Rocher)는 바위 모양의 초콜릿을 이르는 프랑스어이다. 초콜릿 가게 겸 카페 겸 공방의 주인인 비안에게는 이보다 더 달콤하게 어우러지는 성이 또 어디에 있을까.

『초콜릿』에는 비안이 프랑스의 작은 마을 랑스크네-수-탄으로 몰고 온 바람이 겨울의 찬 공기를 몰아내고 봄의 따뜻한 공기를 덥히며 산들거린다. ‘바람’은 비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가장 중요한 단어이다. 비안은 여태껏 한곳에 오랫동안 머무는 일 없이 유럽과 미국을 방랑했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아다니지는 않았지만 (비안이 고백하길) 분명 마녀였던 엄마와 함께 바람이 바뀔 때마다, 카드 점괘에 검은 옷의 사제가 나타날 때마다 이동했다. 그렇게 흘러든 랑스크네에서, 이제 딸에서 엄마가 된 비안은 자기 딸 아누크와 정착하고 싶다. 엄마를 따라 이방인으로 이곳저곳을 가난하게 기웃거리던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성장의 역사가 연속적인 추억으로 아로새겨지는 공간을 선물하고 싶다. 실체는 없지만 비안과 엄마를 끈질기게 따라붙으면서 위협하던 검은 옷의 사제와도 도망치지 않고 맞설 것이다.

마녀부터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꽁꽁 숨겨진 슬픔을 들여다보는 능력, 어두운 무채색 마을에 환한 유채색으로 아기자기하게 단장한 초콜릿 가게 ‘천상의 프랄린’,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회색 토끼 ‘팡투플’, “나는 자네가 무슨 바람에 실려 왔는지 알아. 나는 자네를 보자마자 알아봤어. 자네가 마녀라는 걸 신부가 알까?(아르망드 부아쟁의 말)”까지, 『초콜릿』은 비안의 신비로운 정체를 둘러싼 몽환적인 동화풍 분위기 속에서 극단적인 대립 구도로 소설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시킨다. 이를테면 비안 로셰 vs 프랑시스 레노 신부, 비안이 도착한 사육제 vs 레노 신부가 떠난 부활절, 초콜릿 가게 vs 교회, 집시 vs 랑스크네 주민자치위원회, 엄마 아르망드 부아쟁 vs 딸 카롤린 클레르몽, 아내 조세핀 보네 vs 남편 폴-마리 뮈스카…… 등등. 이야기도 사육제 마지막 날인 2월 11일부터 부활절 다음 날인 3월 11일까지 비안과 레노 신부가 상반된 시선으로 거의 번갈아 서술된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 대해 경보를 울린 그들은, 랑스크네의 중심인 생제롬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위치한 초콜릿 가게와 교회에서 영원히 화해할 수 없는 앙숙처럼 대립한다.


레노 신부는 하필이면 사육제에 랑스크네로 섞여든 비안이 불길하기만 하다. ‘사육제’는 가톨릭 축제이긴 하지만, 씨앗을 뿌리는 신(神) 사트르누스를 기리는 고대 로마의 이교도 제전에서 기원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꺼림칙한 사육제가 끝나면 곧바로 신성한 부활절까지 40일 동안 금욕해야 하는 사순절인데, 그 여자는 일부러 교회 맞은편에다가 나약한 신도들을 유혹하기 위해 초콜릿 가게까지 떡하니 차렸다. ‘초콜릿’은 이교도들이 광란의 제전에서 사악한 환희와 황홀한 타락을 탐닉케 하는 악마의 유혹이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이쯤 되면 미식을 위한 모든 음식, 쾌락을 위한 모든 에로스, 평상심을 방해하는 희로애락의 모든 감정에 대한 금욕과 절제와 고행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마녀를 좌시할 수 없다.


비안은 엄마와의 떠돌이 생활 중에 언제나 그들을 위협하며 쫓아왔던 검은 옷의 그림자를 레노 신부에게서 발견한다. ‘검은 옷의 그림자’는 자유로운 모험가이자 영원한 여행자인 그들을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침입자로 간주한다. 그들은 도덕적 관습과 종교적 규율에 몰개성적으로 순응해 공동선의 질서에 따라 조화롭게 통제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험한 바람을 불어넣어 개인으로서의 욕망하는 자아를 일깨우고 공동체의 근간을 뒤흔드는 불순분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비안이 더 이상 도망치지 않고 정착하기로 마음먹으면서, 위협을 느끼고 왠지 모를 두려움 속에서 초조해하는 쪽은 검은 옷의 그림자, 즉 레노 신부로 역전된다. 사제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사랑의 포용력을 오히려 비안이 발휘해 레노 신부를 가엾게 굽어본다. 레노 신부가 비안을 추방하기 위해 무슨 짓을 꾸며도 비안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행복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신념에 따라 초콜릿 가게를 열고, 딱딱하게 경직된 사회적인 육체 속에 갇혀 상처로 곪아가는 개인적인 정신에 가닿는다. “빨대로 마시는 소돔과 고모라”일지언정 사람들에게 ‘천국의 행복’을 선사한다면 비안을 초콜릿을 만들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비안 로셰와 프랑시스 레노의 싸움에서 승리는 당연히 덜 초조해하는 쪽, 덜 두려워하는 쪽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로 서로와 싸웠을까? 그들 역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게 비밀 하나를 붙들고, 그 진실과 어떻게 대면하고 용서하고 화해할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어쩌면 너무나 달라서 어떤 시공에서도 교차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들 삶의 태도는 바로 그 인생의 숙제를 풀기 위해 각자 나름대로 선택한 최선의 방식일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들이 서로에게 첫 열쇠였을지 모른다. 하나도 닮지 않았지만 징그럽게 닮아 있다는 것을 서로 첫눈에 알아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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