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 플레이어
조안 해리스 지음, 박상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강력한 반전을 숨기고 있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언제나 조심스럽다. 특히 조안 해리스의 『젠틀맨 & 플레이어』처럼 반전에 또 반전을 거듭 예비한 소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교훈 한 가지는 ‘인물, 혹은 범인의 정체가 아무리 궁금해도 절대로 미리 확인하지 말 것!’이다.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조급한 성질 때문에 추리소설조차 범인을 미리 알아두고서 읽어나간다. 궁금하다 못해 짜증이 치미는 것보다는 그 편이 훨씬 마음 편하고 추리 과정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재미가 반감된다는 것도 별로 실감하지 못했다.

『젠틀맨 & 플레이어』를 각자 ‘나’의 시점으로 이끌어가는 두 서술자 가운데 한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졌을 때 당연히 책의 뒷부분을 먼저 들춰봤다. 역시 내가 예상했던 인물이군, 하고 착각하는 데에서 멈춰야 했다. 하지만 재차 확인하자는 심산으로 책장을 더 넘기다가 숨이 멎을 뻔했다. 모르는 편이 나았을 것을 알아버린 당혹감에 휩싸였다. 언제나 후회는 뒤늦다, 는 너무나 평범한 상식을 통감했다. 그러니 이 소설을 읽는다면 눈길보다 먼저 내달으려는 손부터 꼭 붙들어 매두길!

『젠틀맨 & 플레이어』는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라는 영국 상류층을 위한 사립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이곳은 담장이나 울타리, 철책 같은 것 없이 ‘무단출입 금지’라는 나무 팻말 하나만 세워놓아도 함부로 침입하려들지 않는 권위와 명예와 전통을 지닌 학교이다. 학교 안에 있는 사람이나 학교 밖에 있는 사람이나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무언의 약속 같은 것이다. 학교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감히’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고 명예를 실추시키고 전통을 무시하지 못한다고 자만하고, 학교 밖에 있는 사람은 ‘감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모든 드라마는 욕망이 있어야 성립되기 마련이듯 『젠틀맨 & 플레이어』는 이 ‘감히’를 욕망한 아이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스나이드는 아빠가 세인트오즈월드 문법학교의 사택에 살면서 수위로 일하는데도 코앞에 있는 최고의 학교를 두고 멀리 최하의 학교에 다녀야 하는 현실에 좌절한다. 가난하고 난폭하고 불량한 하류층 아이들이 모여 있는 서니뱅크 종합학교에서, 작고 연약한 몸집에 운동감각마저 없는 스나이드는 다른 아이들이 마음껏 괴롭혀도 되는 먹잇감으로 따돌림당한다. 스나이드는 책을 좋아하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책이라는 것을 들고 있기만 해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서니뱅크가 아니라 ‘거대한 도서관을 갖춘’ 세인트오즈월드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이라는 사물은 어린 스나이드가 자신을 서니뱅크와 분리하고 세인트오즈월드와 동일시하는 대표적인 매개체이다. 또한 세인트오즈월드와 서니뱅크가 현재 무엇에 의해 양극단으로 구별되는지도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돈’이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계층은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세습되고, 스나이드가 서니뱅크 학생이 되리라는 것은 우연하게 가난한 부모의 자식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우연치 않게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스나이드는 그것을 거부한다. 그리고 세인트오즈월드와 서니뱅크가 ‘돈’이 아니라 ‘책’으로 구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린 스나이드는 세인트오즈월드를 동경하면서 ‘무단출입 금지’ 나무 팻말 밖에서 맴돌다가 안으로 한 발짝씩 점점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처음의 한 발짝이 어렵지 일단 걸음을 떼면 두 발짝, 세 발짝, 네 발짝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발짝을 더할수록 ‘살금살금’ 걸음은 ‘성큼성큼’ 걸음으로 과감해진다. 단지 여섯 글자(번역어로!)가 적혀 있을 뿐인 나무 팻말의 위압적인 분위기에 눌렸던 자신이 한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스나이드가 아무리 세인트오즈월드 안에서 진짜 학생처럼 훔친 교복을 입고 성큼성큼 돌아다녀도, 진짜 학생보다 세인트오즈월드에 대해 더 속속들이 알아도, 진짜 학생 리언과 친구가 되어도 진정으로 세인트오즈월드에 속하지는 못한다. 언제든 자기 정체를 들키는 순간 세인트오즈월드의 ‘무단출입 금지’는 발동될 것이므로. ‘무단출입 금지’는 스나이드가 ‘줄리언 핀치벡’이라는 유령으로 세인트오즈월드에 존재할 때만 무력할 것이므로.


줄리언 핀치벡으로 세인트오즈월드를 떠돌았던 어린 스나이드를 회상하는 서술자는 어른이 되어 역시 자기 정체를 완벽하게 위장하고 교사로 부임한 ‘나’이다. 이 소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큰 재미이자 반전은 스나이드, 혹은 핀치벡이라는 이름은 물론 쓰지 않는 그 ‘나’가 도대체 누구인지 추리하는 것이다. 『젠틀맨 & 플레이어』를 한창 읽을 때는 나도 오로지 거기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돌아보면, 어린 시절에 열망했으나 끝내 거부당한 스나이드가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 정체를 숨이고서야 비로소 세인트오즈월드에 돌아올 수 있었다는 점이 쓰디쓴 뒷맛과 함께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스나이드’까지 알지는 못했어도 ‘줄리언 핀치벡’은 봐준 리언을 위해, 가 명분이긴 하지만, 사실 ‘나’의 반격과 복수는 자신을 무시하고 거부한 세인트오즈월드의 자격을 심판하기 위한 싸움일 것이다.


여기에서 세인트오즈월드와 서니뱅크를 구분하는 것은 ‘돈’도 아니고 ‘책’도 아니라는 게 드러난다. 단지 위선과 허위와 가식을 안으로 숨기느냐, 겉으로 드러내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나’는 세인트오즈월드의 허상을 만천하에 드러내어 그 아성을 무너뜨리는 데 몰두하지만, 그 필사적인 몸짓에는 어린 스나이드의 그림자가 동시에 짙게, 그리고 슬프게 드리워 있다. 젠틀맨(곧 100학기 수업을 채우는 노교사이자 이 소설의 또 다른 서술자 ‘나’인 로이 스트레이틀리로 대표되는 세인트오즈월드)과의 대결에서 플레이어(스나이드)는 철저한 계획하에 일방적으로 승리한다. 하지만 경기장에서 도망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젠틀맨이 아니라 플레이어이다. 게다가 그렇게 경기장을 벗어나는 플레이어의 뒷모습이 영광스럽다기보다 쓸쓸하고, 과연 플레이어가 이긴 것이 맞기나 한지 미심쩍기만 하다. 스나이드와 세인트오즈월드의 화해 같은 감동으로 끝났다면 너무 교훈적인 결말로 진부해졌으려나, 이것은 가슴 아픈 데자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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