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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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픽션이다. 픽션은 사실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이나 묘사와는 달리 가공의 인물 혹은 이야기 따위를 말한다. 말 그대로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의 세계인 셈이다. 하지만 아니 에르노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이것이 허구인지 진실인지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니 에르노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을 마치 타인의 눈으로 보는 듯한 글을 쓰는 작가다. 아버지 이야기였던 『남자의 자리』와 어머니 이야기인 『한 여자』를 통해 작가는 남자와 여자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히려 이야기라기보다는 기록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객관적이며 군더더기 없는 글이다. 하지만 『남자의 자리』와는 달리 『한 여자』에서는 아니 에르노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제법 보인다. 아버지, 남자의 모습을 그나마 객관적으로 들여다봤던 것과는 달리 늘 주위에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고, 동일한 성을 가진 여자로서 이를 거부하거나 공감하게 되는 모습―제목인 『남자의 자리La place』가 ‘자리(원제목)’로 한 발짝 떨어진 모습이라면 『한 여자Une Femme』는 ‘여자’로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제목인 것도 다른 점이다―을 보여 흥미롭다. 책의 말미에 보이는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담담하게 써내려가는 부분은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종종 화려한 수사학적인 장치들보다 간단하고 군더더기 없는 글귀가 감정을 더 잘 드러내주기도 한다.

“나는 내가 태어난 세계와의 마지막 연결고리를 잃어버렸다.”(110p)


아니 에르노는 어쩌면 어머니에게 직접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소설의 형식만 빌어 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제겐 늘 주위에 있던 어머니였지만 여자로서의 삶은 이런 모습이었지요’라고 말이다. 자식의 눈으로가 아닌 자신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여자의 모습을 객관적인 타인의 모습처럼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딸에게 자신이 갖지 못한 모든 것을 주었고 더 많이 배우고 세련되어진 딸처럼 되고 싶어 하지만 결국 다른 세계로 떠나버린 듯한 딸을 보는 어머니, 이런 어머니를 부끄러워하게 되는 변해가는 딸의 모습, 결국 『한 여자』는 어머니라는 모습 이전에 인간일 수밖에 없는 한 여자의 이야기, 지극히 개인적이어서 누구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자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은 픽션이다. 『한 여자』가 삶의 기록 같은 군더더기 없는 글일지라도 소설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말들을 통해서만 가닿을 수 있는 내 어머니에 대한 진실을 찾아 나서는 것”이며 개인적인 기록이 세상 모두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가 되었기 때문이다. 가족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접점에, 신화와 역사의 접점에 위치하길 원했기 계획했기 때문이다. 일기가 문학이 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이번에는 내가 어머니를 세상에 내어놓기 위해서 그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가 보다.”(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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