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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남자의 문제
하워드 제이콥슨 지음, 윤정숙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유머만큼 다른 나라의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인간의 감정이야 만국 공통의 것이긴 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인 슬픔과는 달리 유머의 방식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식 유머, 영국식 유머라는 말을 흔히 하는 것만 보아도 나라마다 웃음에 대한 포인트를 잡아내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어디 이뿐이랴. 문화, 성별, 인종,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유머는 모두 다 다르다. 요새 개그 프로를 보며 시끄럽다고만 하시는 부모님들을 떠올린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이런 것이다. 외국 영화관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보자. 분명 영화는 슬픈 장면인 것 같은데 관객들은 그걸 보며 웃고 있는 것이다. 하워드 제이콥슨의 『영국 남자의 문제』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43년 부커상 사상 최초의 유머 소설!”이라는 띠지의 글귀가 무색할 정도로 책을 읽다가 웃게 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영국 남자의 문제』는 상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두 남자, 샘과 리보르. 그리고 아무것도 상실할 기회조차 없는 남자 줄리언. 결혼에 관한 흔한 농담 중 이런 게 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편이 낫다’라는 말이다. 샘과 리보르는 평범한 비극을 겪는 남자들이다. 평범하다고? 그렇다. 평범한 비극이다. 결혼을 해서 살다가 아내나 남편을 잃는 평범한 비극 말이다. 줄리언은 이런 평범한 비극이 갖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잃을 만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잃어버리고 상심할 정도의 사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것이 더 큰 아픔일 것이다. 게다가 줄리언은 유대인이라는 끈끈한 유대감으로 묶인 두 남자―특히 줄리언이 붙인 유대인이라는 의미의 핑클러는 샘 핑클러에게서 따온 것이다―에게 또 다른 부러움을 느낀다. 결국 줄리언은 이런 욕망 때문에 샘의 아내와 불륜의 관계까지 맺게 된다. 줄리언은 끊임없이 상실을 느끼지만 늘상 경계에 서 있다. 상실감을 느낄 수 있는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영국인이면서 영국 주류 사회에 편입하지 못하고 유대인들의 작은 사회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결국엔 그는 여전히 소외된 영국 백인일 뿐이다. 이런 줄리언과는 달리 유대인인 샘은 자신이 핑클러인 것을 증오한다.
비록 이 책이 ‘유대인의 문제(The Finkler Question)’라는 제목을 가졌긴 해도 직접적인 의미보다는 유대인이라는 사회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될 뿐이다. 사실 줄리언의 삶이 곧 우리의 삶 아니던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열망하고 속하지 못한 곳에 있고 싶어 하는 것이야말로 현대인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것들을 부정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속에 있을 수밖에 없는 샘 핑클러 역시 고전적인 메타포이다. 『영국 남자의 문제』는 띠지처럼 유머스럽지도 않고―물론 유머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나이를 먹고 과거를 이야기할 때 웃게 되는 그런 웃음이 있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