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래 봄에 죽기를 가나리야 마스터 시리즈
기타모리 고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추리소설의 꽃은 역시 탐정이다. 오귀스트 뒤팽을 시작으로 전형적인 탐정의 모습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같은 천재형 탐정(일본 쪽이라면 당연히 긴다이치 코스케와 아케치 코고로)과, 어쩐지 그 후계자 격으로 느껴지는 젊은 느낌의 엘러리 퀸은 물론 두뇌보다는 거친 현실에 온몸으로 맞서는 하드보일드 계열의 샘 스페이드와 필립 말로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외에도 수없이 많은 탐정들이 이야기 속에서 살아 숨 쉬지만 탐정들 계열 중 가장 특이한 모습이라면 역시 ‘안락의자 탐정’이 아닐까 싶다. 안락의자 탐정이란 말 그대로 안락의자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만 듣고 추리를 하는 어쩌면 탐정 쪽 궁극의 모습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쪽 계열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는 미스 마플―의외로 행동파의 모습도 보여주지만―이 있으며 가장 인상적이면서 기괴한 모습을 보인 『구석의 노인 사건집』의 이름 모를 노인이 떠오른다.

이처럼 탐정 이야기를 줄줄이 늘어놓은 이유는 지금 소개할 기타모리 고의 『꽃 아래 봄에 죽기를』에 등장하는 구도 데쓰야 때문이다. 구도는 맛있는 요리가 나오는 작은 맥주 바 가나리야의 마스터인 동시에 안락의자 탐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단골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사건을 추리―명쾌한 결론을 짓지도 않고 자신의 의견일 뿐이라는 말을 꼭 덧붙이는 장치 등으로 탐정의 모습을 최대한 희석시키고 있다―하고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모습은 또 색다른 탐정을 만났다는 즐거움이 크다. 여섯 가지 이야기가 연작 형태로 포함된 이 책을 읽다 보면 탐정의 특별한 모습 이외에도 이야기 자체에서도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 「꽃 아래 봄에 죽기를」과 마지막 「물고기의 교제」는 하이쿠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경우처럼 보통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하이쿠나 전래되는 노래들을 보면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하이쿠와 일기의 경우 사건 발단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책의 제목이기도 한 가슴 시린 이야기 전체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게 된다. 이런 점뿐만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도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단편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책에 실린 다른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느낌은 확실해졌는데 「가족 사진」이나 「마지막 거처」는 물론 다른 작품들 역시 구도의 추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상 미스터리라는 범주에 넣기에도 추리의 느낌은 옅다. 전통적인 추리소설을 기대한 독자라면 실망스럽겠지만 추리의 요소가 입혀진 단편소설을 읽는다는 기분으로 접하게 되면 굉장히 즐거운 작품집이다.


안타깝게도 작가가 이른 나이에 타계하여 많은 작품을 쓰진 못했으나 기회가 된다면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다. 처지는 달랐지만 병사한 작가의 죽음에 첫 이야기의 주인공이 오버랩되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하이쿠의 구절이 떠오른다.


“원하건대 꽃 아래 봄에 죽기를

그 추운 음력 이월의 보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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