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세상에는 어딘지 모르게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들이 있다. 집배원도 그런 좋은 기억들 중 하나라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물론 요즘에야 택배 차나 오토바이를 끌고 PDA를 들고 다니며 편지보다는 홍보물이나 명세서를 전하기 바쁜 시대가 되었지만 나이를 좀 먹은 사람이면, 특히 시골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빨간 자전거에 황토색 가방을 둘러메고 반가운 소식을 전하러 다니는 집배원의 모습에서 나쁜 기억을 찾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들이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집배원 역시 우체국의 직원, 특히 국가에 소속되어 있는 직업의 세계로 들어가면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찰스 부코스키의 『우체국』은 그런 의미에 더해 내용 자체도 매우 불건전하며 나쁜 소설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자신이 집배원이거나 가족 중에 집배원이 있다면 심호흡을 한번 하고 읽을 것을 권한다.

“우체국 소속 직원 모두는 절대 타협하지 않는 정직성과 공익에 대한 완전한 헌신을 원칙으로 행동한다.” “공공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명예롭고 정직하게 행동할 특별한 기회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복무 윤리 강령 중 일부. 미합중국 우정사업본부
“세상에, 집배원들은 편지를 넣고 다니면서 여자들하고 같이 눕기도 하는구나. 이거 나한테 딱 맞는 일인데. 오, 이거야, 이거.” ―헨리 치나스키. 미합중국 집배원


크리스마스에 임시 집배원으로 일을 하게 된 헨리 치나스키는 배달을 나갔다가 우연히 여자와 자게 되고 그것이 마음에 들어 정식으로 보결 집배원이 된다. 하지만 집배원이 된 그에게 좀처럼 그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지 않고 매일을 술에 찌들어 출근해 고된 노동을 반복하고 가학적인 상사는 늘 자신을 괴롭히기만 한다. 정교하게 짜인 미국의 노동 시스템은 우체국에도 그대로 적용되어 조직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결국 치나스키는 우체국을 떠나게 되지만 3년 후 다시 돌아와 젊은 시절 내내 우체국에서 반복적인 일상을 하게 되지만 여전히 그는 조직에 저항한다.


현대의 조직 속에서 살아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런 조직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공공의 목적을 가진 우체국이야말로 정확한 규율 속에서만이 존재할 수 있는 곳이고 치나스키는 철저히 그에 반하는 인물이다. 그는 항상 조직에 불만을 제기하고 조직의 톱니바퀴가 되는 것을 거부한 유일한 인간이었다. 어차피 소설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그런 치나스키 역시 12년이라는 젊은 시절을 우체국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시스템 속에서 그렇게 발버둥친 것은 그나마 인간적인 모습을 잃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무미건조한 관료주의 시스템만큼이나 특별한 사건이 없이 계속되는 지루한 일상이 반복된다. 심심하고 무미건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인생 또한 별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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