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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청부업자의 청소가이드 ㅣ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4
하들그리뮈르 헬가손 지음, 백종유 옮김 / 들녘 / 2012년 1월
평점 :
20세기 들어 가장 수치스러운 전쟁이라 불리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은 세계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전쟁은 참혹하고 비극적이지만 유고슬라비아 내전은 민간인 학살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인종 청소가 자행된 인간 몰락의 끝까지 보여준 끔찍한 전쟁이었으며 비극의 시기였다. 게다가 이 전쟁은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이 없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중재하려는 적극적인 개입마저도 없어 피해는 더욱 심각했다. 전쟁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 참혹한 비극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비극에 동조했던 사람들마저도 결국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게 만든다.
하들그리뮈르 헬가손의 『살인청부업자의 청소 가이드』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비극을 소년병으로 참전하며 겪고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내면으로는 참혹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토미라는 한 남자의 극적으로 뒤바뀌는 인생을 통해 우리 시대와 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을 조명한다. 이런 설명만으로는 아주 무겁고 우울한 느낌의 이야기일 것 같은데 이 이야기는 오히려 유머스럽고 경쾌하다. 주인공 토미슬라브 보크시치의 엉뚱함 속에 숨겨져 있는 전쟁과 상처로 얼룩진 인생이 주위의 환경에 의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감상하는 것은 한편의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크로아티아 출신으로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소년병으로 참전해 온갖 참혹한 현장을 직접 경험한 토미. 미국으로 건너온 뒤 톰 보식이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톡시(독종)로 불리는 토미는 뉴욕의 히트맨, 살인청부업자이다. 토미에게 살인청부업이라는 직업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멧돼지를 쏴 죽이듯 사람을 죽이고 그걸로 밥벌이를 하는 것이다. 별생각 없이 콧수염이 달린 녀석을 죽이고 토미에게는 큰 문제가 생겼다. 그 콧수염 녀석이 바로 FBI였던 것이다. 토미는 어쩔 수 없이 고향인 크로아티아로 피신을 하기 위해 JFK 공항으로 향했는데 FBI의 감시를 피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자신과 체격과 스타일이 비슷한 사람을 보고 그 사람으로 위장하기 위해 또 죽인다. 하지만 이게 토미에게 더 큰 시련을 안겨줄 줄이야! 죽은 사람은 성직자였다. 데이비드 프렌들리 신부님, 방송에 설교 토크쇼 요청을 받고 아이슬란드로 날아가게 된 토미. 토미의 인생은 추위와 믿음으로 가득한 아이슬란드에서 어떻게 변하게 될까.
참혹한 전쟁을 경험한 전문 킬러가 어쩔 수 없이 성직자 역할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항상 죽음과 함께 살아온 토미에게 아이슬란드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쏴 죽였을 남자를 향해 웃음 짓고 성직자의 역할을 제법 잘 수행한다. 끔찍한 인종 청소가 행해졌던 자신의 전쟁터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외국에서 건너온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들과도 어울린다. 토미에게 크로아티아와 뉴욕의 진짜 인생은 죽음의 공간이었다면 아이슬란드의 가짜 인생이 삶의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토미는 다시 진정한 자신의 삶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이겨내야 하는 것은 고향의 삶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