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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ㅣ 김영사 모던&클래식
존 스타인벡 지음, 안정효 옮김 / 김영사 / 2011년 11월
평점 :
요새 인터넷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말 중에 천조국이라는 것이 있다. 원래 의미대로라면 제후의 나라가 천자(天子)의 나라를 가리켜 부르는 말이었겠지만 인터넷상에서의 천조국은 미국을 말한다. 국방 예산이 천조가 넘는다―실제 천조가 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엄청난 금액이다―는 것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것이다. 얼핏 세계 경찰국가임을 자임해 왔던 미국을 바라보는 시선 중 하나이겠지만 다른 것에서도 미국, 아메리카에 대한 세계의 동경―현재는 많이 줄어든 것 같지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최대의 다민족, 다문화 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미국을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는 바로 미국 그 자체이다. 아름다운 나라가 아닌 아메리카 합중국인 미국이 만들어지면서 흘린 피의 역사를 아는 것, 즉 미국의 과거를 이해해야만 미국의 현재 모습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조드의 삶은 그 형태만 바뀐 채로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는 약속의 땅 아메리카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과거 아메리카의 역사로 현재를 알 수 있으며, 또한 아메리카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록 이 책이 50여년전에 쓰여졌을지라도 현재의 미국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 책의 첫 장 ‘E Pluribus Unum(여럿에서 하나)’는 아메리카의 모습을 가장 명확하게 알려준다.
“아메리카는 그냥 생겨나지 않았다. 400년에 걸친 고된 노동과, 피 흘림과, 외로움과, 공포가 이 땅을 창조했다. 우리들은 아메리카를 생산해 냈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온갖 인종에 뿌리를 박고, 온갖 피부 빛깔로 얼룩지고, 겉으로 보기에는 인종상의 무정부 상태를 이루는 새로운 종족 아메리카인으로 태어났다. (…) ‘여럿에서 하나’라는 새로운 사회를 이룩했다.”
아메리카의 역사는 투쟁과 피의 역사다. 토착 세력을 몰아내기 위한 피를 흘렸고, 연합체의 국가가 만들어진 이후에는 남과 북이 흘린 피 위에 세워진 것이 아메리카다. 현재의 모습이라고 다를까. 인종에 상관없이 총을 든 아메리카의 젊은이들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지고 진행되는 역사 속에서 아메리카인들은 서로 힘을 모으면서도 경계하고, 평등을 외치지만 어떤 민족보다도 차별이 심하고 넘치는 풍요 속에서도 빈곤은 극심하다. 존 스타인벡은 아메리카를 이야기하지만 여기에 우리나라를 대입해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피의 역사, 불평등, 차별. 과거의 아메리카나 현재의 아메리카나 현재의 한국이나 본질적인 모습이 다를 것이 무얼까. 작가는 여전히 사람들 속에서 희망을 찾는다. 서로에게 피를 흘리고 실수를 할지라도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사람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