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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원시의 자유를 찾아 떠난 7년간의 기록
제이 그리피스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여행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현실에 묶여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좀더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평범한 사람의 여행과 여행자의 여행이다. 평범한 사람의 여행은 우리에게 친근한 그것이다. 삶에 쫓기다가 겨우 며칠 동안의 휴가를 얻어 지친 육신과 마음을 쉬려고 계획하는 것, 그래서 결국 유명하거나 경치 좋은 곳이거나 가끔은 꼭 가보고 싶던 곳을 찾아 열심히 사진 찍고 먹고 돌아오게 되는 것이 어쩌면 우리들의 평범한 여행이다. 여행자의 여행은 조금 더 원시적이다. 때로는 충동적이거나 오지 같은 사람들이 전혀 찾지 않을 곳을 향하기도 한다. 그저 세계를 방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여행자의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것은 여행의 좋고 나쁨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무언가 볼만한 것들을 찾을 것이고 맛있는 것을 찾을 것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고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꿈을 가지고 여행을 떠날 테니까. 여행자의 여행은 그 자체가 삶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삶을 이어가는 것이고 그 기록은 여행자의 삶이 녹아 있는 직접적이면서 호소력 짙은 목소리이기도 하다. 제이 그리피스의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역시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유나 통찰에 대한 담론에 가깝다.
제이 그리피스는 원시의 자유를 찾아 지도 바깥으로 모험을 떠난다는 책 소개는 저자를 돋보이게 할 수는 있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지도의 여백에 탐닉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지도에도 제대로 드러나 있지 않은 원시의 자연―땅, 얼음, 물, 불, 공기, 정신―을 방랑하며 인간의 정신을 탐색하고 그런 인간이 자연에 저지를 파괴의 현장을 증언한다. 제이 그리피스는 “인간의 영혼은 야생성이 가장 뚜렷하게 구현된 형태”라고 말한다. 자연에 순응하고 더불어 사는 인간―원시부족 등―은 자연의 일부로 인정하지만 지식(종교)을 가진 인간에 대한 분노는 날카롭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자연에 맞서려는 인간은 자연을 황무지(도시)로 바꾸는 야만적인 존재일 뿐이라 고발한다.
현대의 삶 속에서 제이 그리피스의 책은 이상론(理想論)에 가깝다. 머리로는 그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지만 몸은 그럴 수가 없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훼손하며 문명에 매인 채 살아왔고 살아갈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버리지 않고서 어떻게 아마존의 삶을 강요할 수 있을까. 문명의 지식이 원시 자연의 삶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럼 반대도 마찬가지가 되어버린 테두리 속의 삶이다. 사람들은 기껏해야 전원의 삶을 꿈꿀 뿐이고 이것도 원시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지식과 종교에 의해 야생성을 거세당해 클로로포름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그곳의 통조림 같은 삶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자연을 파괴해 조금 더 안락한 삶을 누리려는 인간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야생성은 어쩌면 머릿속밖에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