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 문학 걸작선 1
스티븐 킹 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조지훈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종말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어김없이 세기말에 등장하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나 오래전에 TV에서 생중계를 해 줬던 대한민국 발 휴거 소동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2012년이 가까워지면서 마야의 예언이 다시 회자되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큰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한두 달 전쯤 소행성이 지구 쪽으로 접근한다는 소식과 더불어 이 행성이 수메르 신화에서 언급된 12번째 행성인 니비루(NIBIRU)가 아닌가 하여 다시 종말론이 고개를 들었다. 결론적으로 지금까지의 종말론은 모두 실패했고 마야가 예언한 2012년도 별 문제없이(세계의 종말을 예언한 마야가 자신들의 종말을 피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숙명론적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였다면 모르겠지만) 지나갈 테지만 그때가 되면 또 다른 종말론이 나타날 것이다. 종말에 대한 공포와 매력, 인간이 가진 이 두 가지 모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는 죽음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를 가진 인간이면서도 그에 못지않은 호기심을 가진 인간의 양면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유로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인간이 멸종되지 않는 이상 꾸준히 만들어질 것이고 사람들은 겁을 내면서도 또 다른 이야기를 집어들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지만 요새 대 유행인 좀비물 역시 종말론을 살짝 변형시킨 이야기들로 조금 더 자극적이고 공포스럽다.
 

『종말문학 걸작선』에는 종말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종말 그 순간을 포착한 이야기, 종말의 원인이 되는 이야기, 종말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뜻밖으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이 두렵거나 공포스러운 것이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폭력의 종말』 같은 경우는 종말의 직접적인 공포를 다루고 있지만 종말 이후의 삶을 그린 이야기들이나 파올로 바시갈루피의 『모래와 슬래그의 사람들』 같은 경우 인류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다루면서도 공포보다는 허무감을 들게 만드는 경우가 그것이다. 물론 여러 작가들의 작품집이기 때문에 이야기의 내용 또한 다양하다. 고전적인 종말론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일 베일리의 『우리가 아는 바 그대로의 종말』에서부터 컴퓨터의 시대에 어울리는 코리 독토로의 『시스템 관리자들이 지구를 다스릴 때』, 그리고 SF의 세계관과 결합된 작품까지 과거부터 시작되어 미래에도 상상 가능한 종말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 준다. 직접적인 종말 이야기보다 인류의 종말에 대한 근원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이야기 때문에 모든 작품을 흥미롭게 읽는 것은 불가능하다.

많은 종말론의 허구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종말은 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그것은 지구 외적인 문제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문제가 이유가 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더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이며,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나 혼자 살아남을 수 있다는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종말문학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이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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