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보경 옮김 / 시공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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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창조한 불멸의 어린 왕자가 되어버린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그 이름에 순수하게 공명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어린 왕자』에 얽힌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면.

가쿠다 미쓰요는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연작소설집에서 『어린 왕자』를 각별하게 추억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한 친구가 그림이 있는 작은 책을 선물했는데 단숨에 읽고서는 굉장하다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언젠가 한번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았다고, 알고 보니 초등학교 2학년 때 병원 침대에서 재미없다고 내던진 책이었다고, 그 책은 바로 중학교 1학년 때 하늘로 돌아간 이모가 선물한 『어린 왕자』였다고, 비로소 “그 책에 쓰인 내용을 이해했을 때 그 이야기를, 이야기의 세계를, 단어 하나하나를 다시 한 번 이모에게 선물 받은 것 같았다”고.

내 추억도 가쿠다 미쓰요와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나는 초등학교 때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이모가 옷장 서랍 안에 고이 넣어둔 책을 발견했었다. 그게 『어린 왕자』와의 첫 만남이었다. 이모가 직장에 나가서 일하는 동안 몰래 읽었는데, 그때부터 생텍쥐페리의 아름다운 문장들과 어린 왕자에게 푹 빠졌었노라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절반은 하품을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면서 겨우 읽어냈다. 가쿠다 미쓰요처럼 차마 내던지지 못한 것은 다른 읽을거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나도 그 책에 쓰인 내용을 이해할 만큼 성장했을 때에야 비로소 이모가 흔한 책 한 권에 지나지 않는 『어린 왕자』를 그토록 소중하게 간직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서 생텍쥐페리의 편지를 엿본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토록 말간 동화를 쓴 사람의 진심은 얼마나 투명할까. 원래 편지는 다른 누군가가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편지를 받을 대상만을 염두에 둔 글이다.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편지에 담기는 진심의 정도가 달라지겠지만, ‘어머니’라면 진심임을 의심할 여지가 완벽하게 사라진다. 그렇다.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는 생텍쥐페리가 열 살 소년일 때부터 마흔넷의 나이에 영원히 하늘로 돌아가기 직전까지 그의 어머니에게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 숱하게 써 내려간 편지들이다.

이 편지들은, 자신은 그들을 알지 못하지만 자기 글을 읽고 한마디씩 늘어놓을 불특정 다수의 시선에서 놓여나, 오직 자신과 가장 친밀한 엄마라는 유일한 독자를 위해 꾸밈없이 쓰인 글이다. 치부조차 생채기 없이 감싸줄 절대적인 신뢰의 대상에게 토로하는 감정들은 연인을 향한 사랑의 긴장감, 친구에 대한 감정의 절제, 혹은 그들 모두에게 그럴듯하게 보이고픈 과시욕, 그 어떤 과장과 축소의 여과도 없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딱 그만큼의 감정들을 엄마한테 털어놓는다. 그 때문일까,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 중 어느 하나의 별에 사는 어린 왕자였던 생텍쥐페리가 인간적인 욕망과 감정과 고뇌로 이루어진 사람으로 내려앉아 나와 눈 맞추는 것 같은 착각이 든 것은.

그래서 엄마한테 보내는 생텍쥐페리의 편지들을 읽고 있으면 세상의 여느 자식들과 다를 바 없는 면면들에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만다. 여기에서는 어느 별나라의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가 아니라 한 어머니의 아들인 인간 생텍쥐페리로 친밀하게 다가왔던 몇 가지만 기록해 두기로 한다.

『생텍쥐페리, 내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가 엄마한테 보내는 편지들만 (거의) 모아놓았기 때문인지 생텍쥐페리는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엄마에게 상당히 의지한 것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의 학교생활부터 여러 번의 입시 실패를 거쳐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다가 비행사로 자리 잡기까지 생텍쥐페리는 자기 일상을 시시콜콜 전한다. ‘과묵한 아들, 재잘대는 딸’의 공식에서 벗어난 다정한 ‘딸 같은 아들’이랄까. 그리고 어린 시절의 용돈뿐만 아니라 성인으로 경제적인 독립을 도모하지만 그게 여의치 않아 꽤 자주 돈이 바닥나 곤란한 처지를 토로한다. 이번 편지에서는 곧 구하게 될 직장에 대해 낙관했다가도 다음 편지에서는 냉정한 현실에 부닥쳐 실망스러워하는 모습도 곧잘 보인다. 소설 쓰는 비행사로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으면서 소중한 추억의 한 켠에 자리하기까지 생텍쥐페리도 불만에 가득 차서 변변치 않은 직업들을 전전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비행에 대한 사랑만큼은 확고하여 그 순간에는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것이 느껴진다.

생텍쥐페리는 늘 고독과 외로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다. 수천 미터 상공으로 날아올라서는 홀로인 고독을 만끽하다가도 지상으로 내려앉아서는 외로움에 사무친다. 그는 편지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입 밖으로 고백한 적은 없지만 엄마를 사랑해요!’라고 뜨겁게 고백하면서 ‘엄마의 편지만큼 제게 큰 기쁨을 주는 것은 없어요!’라고 날마다 편지를 보내달라고 어린아이처럼 성마르게 보챈다. 서로의 소식을 알 길이 편지밖에 없어서일까, 그는 엄마의 편지를 보채며 자신의 편지를 쓰는 것으로 지상의 외로움을 달래는 것 같았다. 이미 그동안의 무수한 편지들을 통해 마음으로 수천 번 안아준 엄마를,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비행사로서 마지막 정찰 임무를 나서기 직전에 또다시 마음으로 엄마를 힘껏 안는다. 그리고 이다음에 엄마를 안을 때는 마음뿐만 아니라 자신의 건장한 두 팔로 직접 엄마의 온기를 느끼며 안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는 하늘로 온전히 날아올랐으나 지상으로 무사히 내려앉지는 못했다.

생텍쥐페리의 편지들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으로 끝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어른들의 보호 아래 전쟁의 위협을 절감하지 못했던 철부지 소년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쟁의 책임을 몸소 지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그는 마지막 편지에서 엄마에게 고통스레 묻는다. “이 시대는 왜 이토록 불행한 걸까요?” 아들을 놓친 엄마는 “주여, 제 아이를 어디로 데려가셨나요?”라고 울부짖는다. 대중에게는 어린 왕자의 신화를 덧씌워 더욱 신비로운 존재로 가슴에 새긴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비행이 아들의 생사조차 몰라 원통했을 엄마의 가슴을 날카롭게 베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동안 ‘불가사의한 행방’ 운운하며 그의 죽음을 가볍게 입에 올렸던 일이 죄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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