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리의 법칙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5
러셀 뱅크스 지음, 안명희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흔히들 그 시대의 사회상을 알기 위해서는 역사소설을 읽는 것이 가장 좋다고 이야기하지만 성장소설은 역사소설 못지않게 그 시대를 속속들이 보여준다. 성장소설 하면 당연히 꼽게 되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에서도 성장기의 소년에게 비친 그 당시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흑백으로 대표되는 인종문제와 가정의 인습의 파괴가 드러난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 주위의 허영과 위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호밀밭의 파수꾼』의 시대를 뛰어 넘어 상실된 가정에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탈할 수밖에 없는 현실의 모습을 그린 『거리의 법칙Rule of the Bone』이 그것이다. 이처럼 다른 시대의 사회적인 상황에서도 한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은 어른들이 붙인 ‘문제아’라는 딱지이다. 그 ‘문제아’들은 스스로 거리로 뛰쳐나간 것이 아니라 내몰린 것이다. 부모의 이혼과 학대와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리로 나오게 된 ‘문제아’들은 그곳에서 그렇게 살아간다.
채피는 집 안을 뒤지고 있다. 마리화나를 사기 위해 팔아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이다. 엄마가 모아둔 것 같은 옛날 동전들을 발견하고 전당포에 맡겨 마리화나를 핀다. 하지만 양아버지와 엄마에게 들켜 쫓겨나게 되고 아는 형인 러스의 집에서 폭주족들과 함께 살게 된다. 폭주족들이 훔친 물건에 손을 대다 도망간 채피는 스쿨버스에서 아이맨이라는 자메이카인을 만나게 된다. 자신의 삶에서 유일한 안식처였던 마리화나를 제외하고는 채피는 처음으로 어른에게 신뢰를 느낀다. 엄마에게 말할 수 없던 비밀인 양아버지의 성적 학대, 부자들과 주위 사람들의 위선을 보며 환멸을 느낀 채피는 오히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아이맨의 믿음과 충고 속에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채피는 다시 가족의 삶을 꿈꾸지만 복구될 수 없는 그들의 관계에 절망을 느끼고 아이맨을 따라 자메이카로 떠나게 되고 자신의 친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성장소설은 말 그대로 성장소설이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은 인생에서도, 끝없는 절망과 방황에서도 자신이 느낄 수 있는 행복과 희망을 찾아 한 걸음 나아가는 것이 성장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어른의 삶을 살아도 주위에 조금 더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되는 어른이 되어 가는 것이 성장하는 것이다. 러셀 뱅크스는 이런 대비를 보여주기 위해 극단적인 구조를 만들어낸다. 사회는 언제나 쓰레기통일 뿐이고 어른들은 그 속에 사는 쓰레기일 뿐이라고, 아무런 의식 없이 죄를 짓는 채피의 모습까지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 전개는 너무 작위적이기도 하지만 효과는 탁월해 보인다. 결국 채피를 바꾼 것은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의 어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