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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설가의 고백 - 세상의 모든 지식을 읽고 쓰는 즐거움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혜원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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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움베르토 에코라면 기호학자나 철학자보다는 소설가로 더 익숙하다. 『푸코의 추(진자가 아닌)』로 처음 접한 그의 소설은 중세 기독교, 성당기사단, 암호와 기호학 등이 버무려진 지적이고 백과사전식 추리소설로 개인적인 취향과도 맞아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구해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의 정교한 세계관과 지적인 내용에 매료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가로서의 에코도 궁금할 터, 할아버지가 다 된 에코의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란 어떤 것일까?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간혹 사건의 현장 같은 간단한 도면이 등장할 때가 있다. 삽화 같은 것들이 아닌 말 그대로 도면의 일부인데 이런 것들을 보다 보면 그야말로 작은 세계 속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에코의 경우 『장미의 이름』에서 턱없이 많던 각주보다 기억에 남았던 것은 베네딕트 수도원의 도면이었다. “서사는 우주가 탄생하는 사건이며, 그 세계는 최대한 정밀하여 스스로가 일말의 의심도 없이 돌아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자기 자신의 말처럼 에코의 소설 속 세계는 한없이 정교하다. 이런 세계 속에서 독자는 해석의 무한한 확장을 거듭하며 소설가가 구축해 놓은 세계를 덧칠하는 것,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소설 읽기의 즐거움일 것이다.
이처럼 소설 읽기는 해석의 문제기도 하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현실과 일치시키려는 사람들이 많다. 에코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경험적 시청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악역을 연기한 배우가 실제 생활에서도 욕을 먹는 이유는 이야기의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세계를 현실의 감정이나 경험과 동일시하려는 것 때문이다. 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흔한 예로 베이커 가의 셜록 홈즈를 생각하면 쉬울 것이다. 이처럼 작가가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소설이 대중에게 공개된 이상 수많은 해석들과 오해가 뒤따르게 된다. 또한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은 현실의 독자에게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소통하지 못한다. 항상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햄릿은 ‘불구’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불완전한 세계 속에 사는 햄릿을 인정해야만 한다.
소설가로의 인생이 28년밖에 되지 않고 다섯 편의 소설밖에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젊은 소설가의 고백』이라는 제목을 지은 에코의 허풍과 함께하는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에코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에코가 만들어 놓은 우주는 발을 들여놓기가 쉽진 않지만 빈틈없는 그의 서사 속에서 헤매다 보면 그의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런 에코의 세계에 다시 빠져들고 싶은 기분, 다음 소설이 또 기대된다고 하기엔 너무 이른 재촉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