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샬럿 브론테의 비밀 일기
시리 제임스 지음, 노은정 옮김 / 좋은생각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나에게 각별한 소설이다. 어릴 적 순수한 몰입으로 방이 어둑어둑해지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책장에 코를 박았던 시절, 그 시절에 나는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소녀’와 ‘고아’에 열광했다(일찌감치 결혼하여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는 독립했지만, 삼십 대 중반의 어른 나이로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찰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있는데도 ‘내가 고아라면’이라는 상상은 왜 그토록 했는지 모르겠다. 뭐, 아무튼……). 『제인 에어』의 책장을 채 몇 장 넘기지 않아 나는 제인에게 매료됐다. 제인은 책을 좋아하는 고아 소녀였다! 게다가 별로 예쁘지도 않고 깡말랐으며 마냥 순둥이가 아니라 고집도 대단했다! 어쩌면 『제인 에어』를 쓴 샬럿 브론테도 제인 같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던 것 같다.
시리 제임스의 『샬럿 브론테의 비밀 일기』는 어쩌면 자기 분신인 제인을 꼭 닮았을지도 모르는 샬럿, 그러나 샬럿 브론테의 편지와 그녀의 생애를 다룬 평전 같은 객관적인 사실 자료들을 바탕으로 작가 자신이 상상하는 이미지를 덧보태어 샬럿을 되살려냈다. 시리 제임스는 샬럿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전제한다. 샬럿의 자필 일기가 발견된다면? 샬럿과 결혼한 브론테 집안의 영원한 목사보 아서 벨 니콜스 씨가 사생활 노출을 극히 꺼린 아내를 위해 꽁꽁 숨겨두었던 자필 일기가 백 년도 더 지나서 발견된다면? 그리하여 샬럿을 오마주하며 그녀의 문학적인 인생을 재구성한 이 소설의 제목이 ‘비밀 일기’이다. 시리 제임스는 자신이 샬럿인 것처럼 썼다고 믿는다지만, 그녀의 의도가 얼마나 훌륭하게 구현됐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남는다.
‘일기’라고 하면 기대하게 되는 것은 날짜와 그날 보고 듣고 느낀 것들 중에 유독 마음에 새겨진 사건, 사람, 풍경, 심경이 가장 생생하게 섬세한 숨결로 기록된 문장들의 총집합이다. 같은 대상을 이야기하는데도 하루하루 미묘하게 달라지는 어휘나 분위기는 다른 사람의 일기를 몰래 읽는 묘미를 배가시킨다. 편지로 이루어진 책이긴 하지만, 메리 앤 셰퍼와 애니 배로우즈의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이나 헬렌 한프의 『채링크로스 84번지』는 그런 점에서 아주 탁월하다. 편지를 주고받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편지를 통해 함께 공유하는 시간과 추억이 쌓일수록 편지의 주인공들은 점점 친밀해지고 농밀한 사랑과 견고한 우정을 나눈다. 그 과정이, 굳이 작가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그날그날의 편지를 읽어 나가는 것만으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기도 편지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 나는 샬럿 브론테의 진짜 일기가 아니라도 그렇게 잘 가공된 일기를 원했던 것이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일기는 좀처럼 나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일기만 전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길 바랐다. 간혹 ‘키티’라는 이름으로 일기장을 부른 안네처럼 “일기장이여”, “일기장아” 하고 가상의 샬럿이 부르긴 하지만 회상 형식으로 쓰인 이 소설에 굳이 ‘일기’라는 제목을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샬럿의 자필 일기가 발견된다면?’이라는 애초의 가정을 성립시키기 위한 궁여지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하튼 『샬럿 브론테의 비밀 일기』는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 목사의 목사보로 일하던 아일랜드 청년 아서 벨 니콜스의 청혼을 받은 날, 샬럿 브론테가 흥분과 설렘을 억누르지 못한 채 그 소식을 전하면서 아서의 청혼을 받기까지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쓰였다. 하지만 샬럿과 아서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문학적인 영혼을 공유한 세 자매 샬럿과 에밀리와 앤이 어떻게 황량한 요크셔의 쓸쓸한 목사관에 틀어박힌 채 『제인 에어』와 『워더링 하이츠』와 『아그네스 그레이』를 쓰게 됐는지, 그 소설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출간됐는지, 그렇게 출간된 이후 영국 사람들의 반응과 그 반응에 대해 그녀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에 주목하면서 그녀들의 성품을 형상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시리 제임스가 재창조한 세 자매는 뚜렷한 개성으로 생동감을 가진다. 왠지 모르게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에서 베스를 닮았을 것 같은 앤을 제외하면, 샬럿과 에밀리는 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다소 차이가 있다.
가령 시리 제임스의 샬럿은 제인처럼 예쁘지 않고 깡마른 체형인 데다가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거기까지는 나의 상상 속 샬럿과 같다. 내가 상상한 샬럿은 좀더 내성적이고 진중한 성격이지만 가슴속에는 뜨거운 영혼을 간직하여 뜻밖의 상황에 아무도 예상치 못한 담대한 용기를 내고 재치 있는 기지를 발휘하는 강단 있는 외유내강의 고집스러운 여인이었다. 그러나 시리 제임스가 그려낸 샬럿에 잠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다가도 생각보다 적극적이고, 생각보다 가볍고, 생각보다 자기 오해에 고집스럽고, 생각보다 외모에 열등감을 가진 모습과 맞닥뜨리게 되면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서 니나일 것만 같았던 에밀리는 지독하게 내성적인 은둔자로 묘사되어 있다. 가족 이외의 사람들과는 접촉을 극히 꺼렸고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에는 질색했으며 자기가 쓴 글은 자매에게도 철저하게 은폐했다. 모든 것을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차가운 빙하 한가운데 한 줌의 열기도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가둬두고서 에밀리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글을 썼던 것이다! 브론테 자매들을 앗아간 폐결핵으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도 모든 인공적인 의학 치료를 고집스레 거부한 채 자신의 생사를 자연에 기대었던 에밀리의 마지막은 조금도 생각지 못한 모습이라 감동, 경이, 놀라움을 떠올릴 새도 없었다.
그러나 시리 제임스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브론테 자매와 관련된 자료라면 아서 벨 니콜스에 관한 것까지 모조리 섭렵하여 철저한 고증을 거쳤다고 말한다. “극적인 갈등을 높이거나 기록상 공백을 채우는 데 꼭 필요한 이야기들” 빼놓고는 모두 사실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어쩌면 시리 제임스가 그려낸 브론데 자매들의 모습이 실제와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나는 샬럿 브론테와 각별했다는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평전 『샬럿 브론테의 생애』를 간절하게 읽어보고 싶어졌다. 안타깝게도 책장을 넘기기가 무섭게 오탈자들이 눈에 쏙쏙 들어와서 여간 곤혹스럽지 않았지만, 브론테 자매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니 나는 간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