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와인
엘리자베스 녹스 지음, 이예원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외국소설을 처음 접하게 되면 우선 찾아보는 것이 원제목이다. 요새는 원제목 그대로 나오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말로 제목을 붙이는 경우도 많이 있기에 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영화 쪽도 마찬가지인데 가장 유명한 경우로는 「GHOST(유령)」가 「사랑과 영혼」으로 바뀐 것이다. 소설 쪽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ノルウェイの森(노르웨이의 숲)』이 첫 소개 시 『상실의 시대』로 다시 만들어졌고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벤자민 버튼의 흥미로운 사건(경우)〕』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되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나라에서 원제를 바꿀 때는 원제가 우리나라 사정에 잘 와 닿지 않거나 흥미를 끌기 힘들 경우에 바꾸는 것 같고, 이렇게 바꾼 제목은 소설이나 영화의 내용 자체를 함축적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엘리자베스 녹스의 『천사의 와인』을 처음 보았을 때도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이 원제목이었다. 『The Vintner’s Luck〔포도주 상인(제조인)의 행운〕』이라니, 이런 심심해 보이는 제목을 두고 고심했을 출판사의 모습이 훤하다. 어쩔 수 없이 가장 중요하게 등장하는 천사와 와인을 묶어 제목을 정했을 테고 분명 원제보다는 흥미를 끌 수도 있겠지만 조금은 아쉽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와인 양조업자의 아들인 소브랑의 행운―물론 천사가 그의 앞에 나타난 것도 포함된다. 역설적인 단어로 사용하긴 했지만―의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와인 양조업자의 아들인 소브랑은 가난한 과부의 딸인 셀레스트를 사모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괴로워하다 와인 두 병을 훔쳐 언덕에 올라 마시다가 낯익은 존재를 만나고 기절한다. 천사 새스였다. 천사의 조언으로 그녀와 결혼하게 된 소브랑은 다시 만나게 된 천사와 매년 만날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소브랑은 나폴레옹을 따라 전쟁에 참여하느라 2년간 새스를 만나지 못하고 친한 친구인 밥티스타를 전쟁에서 잃는다. 다시 돌아온 소브랑에게는 현실의 삶이 기다리고 있고 새스와의 만남은 이어지지만 소브랑의 삶은 천사와 함께함에도 불구하고 평온하지만은 않다. 소브랑과 친구 이상의 감정을 갖고 있던 천사 새스는 타락천사이기도 한 자신의 존재를 밝히게 되고 날개를 잃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인간에 대해 배우게 된다.

각각의 장에는 와인의 상태나 숙성 과정의 특정한 단계를 말하는 용어가 제목처럼 등장한다. 뱅 부뤼(햇와인)로 시작해 비니피에(와인으로 변하다)로 마무리하는 이 이야기는 천사인 새스를 만나 평생 함께해 온 소브랑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한 사람을 만나 지상에서 사람들과 섞여 다시 살아가야 하는 새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시간의 손길을 받고 세월에 부대껴 변해가는 와인의 맛처럼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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