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예술을 꿈꾸다 - 상자유와 방황의 야누스 예술과 생활 4
쉬레이 지음, 이영주 옮김 / 시그마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새파랗게 탁 트인 하늘을 마음껏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을 올려다보며 부러운 마음이 한 번도 들지 않았던 사람이 있을까? 어디, 사람뿐일까. 대지에 맞닿아 살아가는 모든 동물들에게는 지구의 중력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게 되는 순간이 수시로 찾아올 것이다. 원숭이가 어쩌다 나무에서 떨어질 때, 닭 쫓던 개가 지붕만 쳐다봐야 할 때, 생쥐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싶을 때, 하룻강아지가 호랑이에게 반격하고 싶을 때, 새우가 고래 싸움에 잘못 끼어들었을 때, 개구리가 깊은 우물 안에 갇혔을 때…… ‘날개만 있었더라면’이라는 바람은 더욱 간절해진다. 날개만 있다면 땅에 들붙어서는 불가능했던 꿈도 너무나 편리하게 가능해진다.

비행의 꿈은 날개가 없는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영원히 꿈꾸는 불가능의 영역이다. 그 꿈의 프리즘을 통해 단 한 번도 나의 자연스러운 공간으로 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하늘과 허공을 자유롭게 누빈다. 쉬레이가 엮은 『비행, 예술을 꿈꾸다』에는 비행과 날개를 향한 꿈의 모든 파편들이 혼재되어 있다. 생텍쥐페리부터 천사와 악마, 도교의 우인(羽人),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카로스, 하늘을 나는 양탄자, 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하늘을 나는 천공의 섬 라퓨타, 이탈로 칼비노의 『나무 위의 남작』 코지모 피오바스코 디 론도, 자크 앙리 라르티그의 사진, 『서유기』의 손오공, 연날리기까지 비행과 날개라는 프리즘이 굴절시키는 꿈들의 환상적인 이미지는 이토록 다채롭게 변주된다.

불멸의 어린 왕자를 탄생시킨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지구별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지만 비행 자체를 사랑한 비행사이기도 했다. 전쟁(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우편 비행사로, 전쟁 중에는 전투기 조종사로 하늘을 누볐다. 그 비행에 대한 열정적인 경험이 『인간의 대지』, 『야간 비행』, 『남방 우편기』에 아름답게, 강렬하게, 치열하게, 고결하게, 사랑스럽게 녹아 있다. 비행으로 인간의 마음을 생텍쥐페리만큼 뒤흔든 사람은 없었다.

그의 실종사로 이어진 마지막 비행조차 신비스럽기 그지없는데, 그는 1944년 7월 31일 전쟁 중 마지막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비행에 나섰다가 하늘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프랑스 남부 상공에서 항공 촬영 임무 수행 중. 아직 귀대하지 않음.”이라는 짤막한 비행 기록과 “나는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정말로 죽는 것은 아니야.”라는 동화만 남긴 채 말이다. 생텍쥐페리가 사라진 그날 아침에 독일군이 그가 비행했던 지역에서 단 한 대의 비행기도 격추하지 않았다는 공식 기록에 의하면 그의 실종은 더욱 불가사의하다. 게다가 비행기의 추락에 따른 잔해도 줄곧 발견되지 않아 생텍쥐페리의 죽음을 둘러싼 전설만 무성해졌다. 이 책에는 장 폴 마리의 「생텍쥐페리의 마지막 비행」이라는 인상적인 글이 실려 있는데, 1998년에 생텍쥐페리의 팔찌가 발견됐고 2003년에 그가 마지막으로 탔던 비행기의 잔해 일부가 인양됐다고 한다.

결국 어린 왕자처럼 자신의 별로 돌아간 줄 알았던 생텍쥐페리는 추락을 했던 것이다. 쉬레이는 비행의 이중성에 대해 말한다. “무거움과 가벼움, 생과 사, 자유와 속박, 이승과 저승, 쾌락과 우울……” 하늘로 날아올라도 언젠가는 다시 땅으로 내려앉아야 한다. 영원히 하늘에 머물 수는 없다. 비행기가 아무리 높이 비상해도 연료가 바닥나기 전에 땅에 착륙하지 않으면 추락이 예정되어 있다. 두 날개를 가진 새조차도 그 날개를 쉬어 가기 위해 발 딛을 땅을 찾아야 한다. 생텍쥐페리도 날아올랐으니 내려앉았을 뿐이다. 하지만 대지로 내려앉은 것은 무거운 육신일 뿐, 그의 영혼은 새털같이 가볍게 더욱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고 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끈질기게 비행을 꿈꾼 인물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을 그린 화가로 유명하지만 조각가, 건축가, 음악가, 해부학자, 수학자, 식물학자, 과학자, 천문학자, 무기 기술자 등 다재다능한 그의 천재성을 수식하는 말은 수없이 많다. 무엇보다도 그는 탁월한 발명가였는데, 그가 평생 매달린 발명품은 바로 날개였다. 「비행은 영혼의 일이다」에서 타오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날개에 대해 이야기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비행의 꿈을 이루기 위해 새의 날개에 집중한다. 그는 진정한 비행은, 비행기 같은 비행기구를 이용한 기계 비행이 아니라 새처럼 두 날개를 펄럭여 공기를 유연하게 가르며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오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인공 날개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지만, 만약 비행기 제작에 힘썼더라면 라이트 형제 이전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실패 요인을 본능과 모방의 차이에서 찾는다. 원래 날개가 있으니 날아야 하는 본능을 가진 새와는 달리, 날개 없이 태어난 인간에게는 새의 날갯짓을 모방하는 능력이 있을 뿐이다. 인간이 아무리 모방을 해도 궁극적으로 새의 비행 본능과 완벽하게 동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가 아니니까.

프랑스 사진작가 자크 앙리 라르티그의 흑백사진들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그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공중에 잠시 떠 있는 찰나를 포착한 사진을 즐겨 찍었다. 공중에 높이 떠 있는 공은 곧 땅으로 떨어질 테고, 계단에서 뜀박질을 하느라 잠시 두 발이 전부 허공에 뜬 사촌 여동생도 곧 안전하게 착지할 테고, 높은 다리에서 우산을 펼친 채 뛰어내리느라 잠시 허공에 머문 형도 곧 강물로 첨벙 떨어질 것이다. 그들이 모두 곧바로 추락할지라도 라르티그의 사진 속에서는 비상의 순간에 영원히 멈춰 있다.

인간은 기계의 힘으로 중력을 극복하기 전에도, 극복한 후에도 여전히 비행을 꿈꾼다. 비행기를 타면 하늘을 날며 자그마한 창으로 구름밭을 내다볼 수 있고 우주선을 타면 하늘 밖 달나라까지 여행할 수 있지만, 그런 물리적인 비행이 언제나 불가능을 꿈꾸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날개가 완성되어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다면 비행을 향한 꿈은 잦아들까. 어쩌면 비행의 불가능한 꿈은 영혼의 날개만이 이루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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