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Q정전 문학동네 루쉰 판화 작품집
루쉰 지음, 이욱연 옮김, 자오옌녠 판화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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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나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읽기가 까다로운 이유 중 하나―번역 같은 문제는 제외한다고 쳐도―는 특정 작품의 경우 당시의 시대상이나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최인훈의 『광장』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는 것과 같다. 루쉰의 『아Q정전』 역시 적어도 신해혁명 전후의 중국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아Q의 이야기는 그저 한 인간의 이야기가 될 뿐이지만 당시의 중국을 이해한다면 아Q는 중국 자체의 이야기가 된다.

태어난 곳도 모르고 성도 모르고 이름도 제대로 기록할 수 없는 아Q는 집도 없어 사당에 살면서 웨이좡 마을의 잡일을 해 주는 날품팔이일 뿐이다. 하지만 아Q는 자존심이 강하다. 마을 사람들은 물론 생원시험 준비를 하는 도령들도 무시한다. 아Q는 '옛날에는 잘 살았고' 아는 것도 많은 데다 '완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동네 건달들에게 무시당하고 얻어맞아도 마음속으로 복수하며 스스로 이겼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아Q만의 기묘한 정신승리법이다. 게다가 아Q는 약자에게는 정말 강하다. 결국 아Q는 동네 과부를 희롱했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얻어맞고 성으로 달아난다. 이후 신해혁명의 어수선한 틈을 타서 혁명단에 가입해 한 몫도 잡고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에게 복수하려 하지만 그곳에서도 쫓겨나게 되고 관부에서는 아Q에게 혁명단의 죄를 뒤집어씌워 본보기로 잡아들이게 된다.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인 루쉰의 이야기와 자오옌녠의 거친 판화는 바로 중국인 자신들의 독백이기도 하다. 사실 조금만 넓게 본다면 아Q의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청(淸)이전에 몽골의 원(元) 치하에 있던 중국인이 겪었던 이야기이며, 다시 반복되는 또 다른 이야기일 따름이다. 중화(中華)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한 중국인들에게는 오랑캐 치하의 삶은 치욕이었지만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현실적인 위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 만족하며 강자에게 겉으로는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비웃는 정신적 자위를 하는 아Q는 중국인의 숨기고 싶은 모습일 것이다. 루쉰은 『아Q정전』을 통해 신해혁명의 실패 이후 현실에 안주하고자 하는 중국인들의 패배주의에 대한 폭로인 동시에 각성을 추구하고자 했다. 루쉰은 혁명을 선동하지는 않았다. 그저 스스로를 속이지 말고 현실에 안주하는 중국인의 이야기를 했을 따름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지독한 좌절감에 젖어야 한다는 것, 그런 좌절감 속에서만 희망을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아Q를 통해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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