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천사
키스 도나휴 지음, 임옥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천사의 이면을 보여주는 것은 예술에서는 이미 흔한 소재가 되어 버렸다. 금기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종교적으로 극히 선한 존재인 천사에 어두움을 부여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물론 종교적으로도 타락한 천사라는 것을 만들어 놓기는 했지만 인간이 손대는 것만큼 짜릿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반대의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 ‘고뇌하는 악마’ 정도면 어울릴까? 하지만 이것은 ‘어두운 천사’만큼의 재미는 없다. 키스 도나휴의 『파괴의 천사』는 이런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종교를 가진 사람은 제외하도록 하자―을 자극하는 것처럼 보인다. 휘황찬란한 띠지를 벗겨 내면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천사를 암시하는 듯한 하얀 깃털이 날리는 모습―외국판 커버들도 느낌은 비슷하다―까지 보인다. 아름다운 소녀의 모습과 파괴의 천사라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은 그 이질감만큼이나 호기심을 더해 준다.

힘들게 얻은 딸 에리카는 혁명과 이데올로기에 심취한 남자 친구를 따라 집을 나간다. 에리카의 아버지는 딸을 잃은 슬픔과 전쟁의 후유증으로 곧 숨지게 된다. 혼자 남겨진 절망 속에 쓸쓸하게 하루를 사는 마거릿의 집에 어느 추운 겨울날 한 소녀가 문을 두드린다. 소녀는 자신이 고아라고 밝히지만 마거릿은 가출한 딸의 아이라고 모두를 속이고 딸을 대신해 함께 살기 시작한다. 노라가 나타나고 주위에는 신비한 일들이 발생하고 노라를 감시하는 수상한 남자도 등장한다. 결국 노라는 자신이 천사라고 하는데…….

키스 도나휴의 『파괴의 천사』는 판타지와 리얼리즘을 묘하게 결합했다. 리얼한 현실 세계 속에 판타지가 뛰어들어와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가 다시 현실의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현실의 이야기 속에 비밀스러운 판타지의 양념을 친 듯한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는 독자에게 모든 것들을 내보여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감추는 것도 문제다. 키스 도나휴는 『파괴의 천사』에 정체가 모호한 비밀을 꼭꼭 숨겨 두었다. 물론 노라라는 존재도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그녀의 주위를 감시하는 낙타털 남자의 존재는 도대체 왜 등장시킨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것들이 이 작품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이 작품은 다른 작품의 변주처럼 보인다. 『스톨른 차일드』의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나치게 현실적인 요정이 등장하는 것이나 어린 시절 성장의 고통, 비밀스러운 존재, 잔잔한 결말 등은 서로 다른 쌍둥이를 보는 것 같다. 리얼해 보이는 현실에 판타지를 끼워 넣는 모습까지도 그러하다. 이런 것들이 키스 도나휴식 이야기라면 할 말은 없지만 다른 작품에서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만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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