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라장 사건
아유카와 데쓰야 지음, 김선영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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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에도 클래식이 존재한다. 꼭 에드거 앨런 포의 예를 들지 않아도 우리에게 익숙한 코넌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이 그렇다. 일본 쪽이라면 바로 떠오르는 작가라면 역시 에도가와 란포가 아닐까 하지만 여기서 소개하는 아유카와 데쓰와의 작품 역시 클래식이라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아유카와 데쓰야 『리라장 사건』의 경우 신본격의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한 작품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당시에는 사회파 추리소설―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이 사회와 인간의 모순, 갈등에 있다고 보고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들을 말한다―득세하고 있던 시기여서 추리소설 본연의 임무라고도 할 수 있는 순수하게 범죄자의 트릭 대 탐정의 두뇌라는 대결을 그렸던 본격소설이 침체된 상태에서 등장한 이 작품은 이후 새로운 본격소설―이를 신본격이라 부른다―들이 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개성들 강하고 자만심과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예술대학 학생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라일락장으로 휴양을 온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증오와 사랑으로 뒤섞인 복잡한 관계를 가진 사이로 사사건건 트러블이 생긴다. 리라장에서 약혼을 발표한 선남선녀 커플, 하지만 이들을 보는 주위 학생들이 시선은 곱지 않다. 다음 날 근처 마을에 사는 숯쟁이가 시체로 발견되고 전날 학생 중 한명이 잃어버렸던 우비와 트럼프 카드 중 스페이드 에이스 한 장이 시체 옆에서 발견된다. 경찰은 실족사로 결론내지만 연이어 학생들이 중독사와 나이프에 찔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살해된 시체 옆에는 잃어버린 트럼프 카드―연속된 스페이드카드―가 발견되고 살인은 연이어 계속 일어난다.

개인적으로는 본격파 추리소설을 더 좋아하는 터라 즐겁게 집어든 책인데 의외로 쉽게 쑥쑥 읽히지는 않았다. 더욱이 어느 정도는 한정된 공간의 살인 사건―섬이나 폭설로 갇힌 산장은 아니지만―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첫째 이유로는 사람들이 너무 급하게 많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살인이 발생하고 다음 살인이 발생하려면 첫 번째 살인사건이 어느 정도 정리된 상태에서 다음 사건이 발생해야 할 텐데 리라장의 경우 너무 급하게 자주 죽으니 읽는 독자의 호흡을 정리할 틈을 주지 못한다. 둘째로는 탐정이 너무 늦게 등장한다. 나는 뒤치다꺼리 탐정이 등장하는 작품을 썩 좋아하지는 않는 편인데 리라장의 경우 매력적인 탐정인 호시카케 류조를 만들어두고도 이야기 말미에 등장시켜 살인 사건을 정리하는 역할로만 맡겨버렸다. 이것은 무능한 경찰을 보여주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범인 대 탐정이라는 구도를 볼 수가 없어 굉장히 아쉬웠다. 살인 사건마다 등장하는 트럼프 카드를 두고 고민하는 탐정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더욱 즐거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은 것은 작가에 대한 평가―요코미조 세이시와 에도가와 란포와 동급의 평가라니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을까―와 더불어 호시카케 류조라는 탐정을 더 볼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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