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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팅 클럽
강영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를 만들어도 학교 문집에라도 실리지 않는다면 상자에 처박아 두던 때가 그다지 오래 되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그만큼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많지도 않았고 쉽지도 않았다. 지금은 어떠한가? 글을 써서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필요도 없다. 컴퓨터 전원을 넣고 키보드를 두드린 후 그것을 포스팅하면 그걸로 끝이다. 1인 미디어의 시대다. 읽지 않아도 고민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그런 시대. 그럴 듯한 사진이 있다면 금상첨화, 지나칠 정도로 경쾌하고 가볍다. 모니터를 보는 사람들 역시 진지하고 긴 이야기보다 짧고 감수성 충만한 이야기를 더 사랑한다.
싱글맘이며 평생 ‘작가 지망생’인 김 작가와 딸 인영은 묘한 동거를 하고 있다. 등단도 하지 못한 김 작가는 동네에 글짓기 교실을 열어 초등학생부터 주부들까지 가르치며 아무런 보상도 없는 글쓰기라는 행복을 함께 느끼고 있다. 엄마를 ‘김 작가’라고 부르는 딸 인영은 김 작가의 글짓기 교실을 이해하지 못하며 장난 같은 글짓기 교실 놀이에서 써내는 글을 쓰레기라고 부르며 경멸하고 있다. 모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김 작가 밑에서 자란 인영은 홀로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하며 엄마와는 달리 ‘진정한 작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우연히 알게 된 J작가의 혹독한 비평과 지도를 통해 나아진 모습을 보여 주지만 작가의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간 인영은 글을 쓸 만한 여유조차 없는 현실에 좌절해 이혼 후 네일아트를 하며 엄마 김 작가처럼 라이팅 클럽을 열게 된다. 결국 김 작가는 ‘작가 지망생’에서 작가가 되고 인영은 엄마처럼 글짓기 교실의 주인이 된다.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은 구시대의 이야기다. 표지의 타자기 그림처럼 글쓰기에 대한 욕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인생 이야기다. 수많은 사람들이 쉽게 글을 쓰고 있고 스마트폰과 트위터로 대변되는 초단문의 시대에 글쓰기에 대한 진지함이라는 것 자체가 낯설게 느껴질 테고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지하건 가볍건 무언가를 써서 타인에게 보여준다는 즐거움은 원초적인 것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도구가 변한다고 해서 글쓰기에 대한 욕망과 그것을 표현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만 있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