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 제15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김유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평점 :
우리나라 사회의 분위기를 잴 수 있는 저울이 있다면, 그리고 그 저울이 ‘진지하다’와 ‘자유롭다’라는 추를 가지고 있다면, ‘진지하다’ 쪽으로 치우쳐 있던 저울이 점점 ‘자유롭다’ 쪽과 무게중심을 맞추려고 시작한 시기가 바로 70년대 생들이 20대가 되던 때 정도라고 생각한다. 매캐한 최루탄 냄새도 점점 줄어들고, 자기들에게 X세대라는 꼬리표가 붙고, 하루키가 유행하고, 젊은 작가들이 등장했다. 이때가 90년대 초반이었다. 나는 이념이 아니라 자신에게 집중하는 젊은 작가들이 좋았다. 그리고 지금 2010년 말, 시대는 다시 우울해졌고, X세대는 개그 소재로나 써먹을 말이 되고, 하루키는 여전히 책을 쓰고, 젊은 작가들은 40대가 되었다. 나 역시 나이를 먹었지만 이제는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젊은 작가들을 여전히 좋아한다. 김유철은 70년대에 태어나 90년대에 청춘을 보냈다.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가 되어 이 이야기를 써냈다.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이 시대 젊은이의 일상을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따라간다. 뭐랄까 굉장히 심심한 이야기다. 흐릿하고 아련한 그런 이야기.
K는 함께 살던 애인 S와 이별했다. 그녀를 사랑했던 K는 방사선 기사로 일하던 병원도 무단결근하며 그만두게 된다. 이혼한 어머니도 몇 년 전 세상을 떠나 철저하게 혼자가 된 K에게 고양이 한 마리가 찾아온다. 울버햄튼의 축구 경기를 보던 도중 샐러드를 주니 맛나게 먹었던 고양이, 그래서 부르기 편하게 이름 지은 것이 사라다 햄버튼이었다. 고양이와의 생활 이후 K에게는 이런저런 일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김유철의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술술 읽히지만 이야기 자체는 진부하다. 갑자기 떠나버린 애인, 유방암에 걸린 엄마, 숨겨진 가족사 같은 소재들이야말로 닳고 닳아버린 소재가 아니던가. 그리고 이야기 구조에 하루키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아닌가 하는 편혜영의 의심이 납득은 간다. 하지만 하루키의 카피품이라는 악의적으로까지 보이는 평가는, 특히 고양이 탐정이나 재즈를 대신한 최신가요 같은 문화적 취향을 이야기 속에 끼워넣은 이유 때문인 듯하지만 문화적 취향이 없이 최신가요를 듣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닥치는 대로 소비한다는 이유로 캐릭터의 위치를 격하시켰다는 편혜영도 이해할 수 없다. 설마 마일즈 데이비스를 듣는 주인공 정도는 돼야 캐릭터 위치가 격하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주인공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닳고 닳은 이별’이나 ‘무기력’한 주인공이 카피품이고 진부할 뿐이라면 대신 불타오르거나 좌충우돌 청춘이 개성적인 것인가? 요컨대 취향의 문제다. 나는 열혈 청춘보다 무기력한 청춘이 더 자연스럽다.
김유철의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좋은 소설은 아니다. 진지하거나 무언가 남는 것이 있는 뚜렷한 이야기를 원하는 독자들이라면 더더욱 실망감을 느낄 것이다. 긴장감 없고 크게 인상적이지 않은 이야기라 더욱 그렇다. 자신은 진지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돌이켜보면 다른 사람들처럼 나 역시 평범하게 살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나이를 먹고 돌이켜보는 청춘 역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