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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리에트가 웃는다
엘자 샤브롤 지음, 이상해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지금은 키보드 위로 열 손가락을 놀리기만 하면, 모니터 너머의 ‘인터넷’이라는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시대다. 끝없이 확장되는 그 세계에는 우리가 양산해 낸 무수한 환영들이 떠돌아다닌다. 모니터 밖에서는 어찌할 도리 없는 자기 자신 위에 달콤한 환상을 덧씌워 현실과 조금도 틀리지 않는 양 가상의 인격을 내세운다. 완전히 가짜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짜는 아닌, 완전히 거짓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진실은 아닌, ‘과장’이라는 편리한 감투를 뒤집어쓴 허깨비 같은. 이제 그 세계에서 완전한 진짜, 혹은 진실을 기대하는 순진한 사람은 희귀하지 않을까. 대부분은 과장에 대비하여 어느 정도 감안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기, 난생처음 인터넷 접속으로 소통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바로 철저한 소통 부재의 프랑스 오지 마을 풀리주악의 노인들이다. 엘자 샤브롤은 『쥘리에트가 웃는다』에서, 인터넷 소통의 허무한 환영을 알 리 없는 노인들이 생애 첫 ‘인터넷 접속’이라는 해프닝을 통해 어떻게 진정한 소통을 회복해 가는지를 귀엽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풀리주악은 산송장들의 죽어가는 마을이나 다름없다.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떠나간 자리에는 가장 많게는 자그마치 백 년을 꽉꽉 살아내고 한 살을 더 보태고 있는 최고령자 쥘리에트부터 가장 적게는 마흔일곱 노총각인 피에로까지 평균 연령 70~80대에 육박하는 노인들만 열 명 남짓 남아 있다. 그들 사이에서 피에로는 마흔일곱 장년의 거한으로 나이를 좀먹어도 여전히 ‘꼬맹이’이고, 오렐리의 예순여섯은 앞으로도 한참은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거뜬히 할 수 있는 짱짱한 나이다. 자동차 사고로 아들을 잃고서 세상과 동떨어진 곳을 찾아 숨어든 50대 후반의 프란츠와 마르틴 부부도 “막 은퇴한 ‘젊은’ 부부”로 불린다.
그렇다면 풀리주악이라는 산골 마을은 얼마나 세상과 동떨어져 있을까? 세벤 지역의 고산지대에 있는 이 산촌은 로제르 산의 고봉과 막장 주변을 둘러싼 높은 암벽에 가려 볕이 잘 들지 않는 데다가 비도 눈도 많아 화창하게 갠 날들은 일 년 중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풀리주악으로 통하는 길은 딱 하나뿐인데 한겨울 동파로 갈라지고 움푹움푹 파여 웬만한 자동차로는 도중에 퍼져버린다. 오로지 풀리주악 노인들의 생필품 구입과 잔심부름을 도맡은 피에로와 우체부, 가끔 의사 정도만 이 길을 오갈 뿐 대부분은 텅 비어 있다. 그나마도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그들조차 옴짝달싹 못하고, 풀리주악은 전기가 끊겨 전화는 물론 TV(!)조차 볼 수 없다.
TV는 풀리주악 노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수단이다. 나이가 들면서 골목길을 나서는 일조차 성가셔지자 노인들은 온종일 혼자서 TV 앞에만 앉아 있게 되었는데, 내 기분이나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듣고 싶은 말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고 홀로 떠들어댈 뿐인 그 무생물은 고독감을 더욱 짙게 드리우고 외로움에 사무치게 한다. 가끔은 이웃의 동태를 살피려고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지만 그조차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다. 피에로와 오렐리를 제외하면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는 인적이 끊어진 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이다.
‘꼬맹이’ 피에로는 마을의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산송장인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그것도 살아 있는 연결 고리다. 그러니 피에로가 “너무 늦기 전에 삶다운 삶을 살아보기” 위해서든, “갑자기 사타구니에 불이 붙어”서든 풀리주악을 떠나겠다고 선언하자, 이 노인들은 피에로의 여자를 구하기 위해 드디어 TV 앞에서 일어나 골목길을 다시 나서기 시작한다. 골목을 오가는 부산한 움직임이 살아나자, 생기 없이 괴괴하게 고여 있던 마을의 공기가 달라진다. 거의 멎어 있던 마을의 심장이 다시 박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쯤에서 ‘인터넷’이 등장한다. 산간벽지인 줄 뻔히 알면서 풀리주악에서 살고 싶어 할, 제정신 박힌 프랑스 여자를 구하기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 프란츠의 소개로 ‘인터넷’이라는 별천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노인들은 프랑스 밖의 세계로 눈을 돌린다. 피에로의 짝으로 프랑스 여자와 별다르지 않은 외모를 지녔으되 프랑스 파리에 대한 동경을 가진 러시아 여자를 낙점한다. 그리하여 이 노인들은 최고령자 쥘리에트의 집에 컴퓨터와 ADSL 일체를 갖춘 ‘피에로의 짝 구하기’ 사령부를 설치하고 피에로인 척 러시아 여자 타티아나에게 구애한다.
그런데 인터넷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이 노인들도 타티아나 앞이 아니라 모니터 앞에서는 반드시 진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노인들은 타티아나를 풀리주악까지 끌어들이기 위해 피에로를 귀족 혈통의 유능하고 부유한 사내로 포장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타티아나도 물론 자신의 프로필에 진실만을 담지는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노인들이나 타티아나나 상대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상대가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애초에 거짓에서 시작된 이 만남에는 처음부터 행복한 결실 따위는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도 피에로와 타티아나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면 그건 작가가 너무나 순진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환상은 현실에서 “원시인 같은 머슴”과 “찬녀(창녀)”로 만난다. 한마디로 서로에게 제대로 당한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착하다. 그 와중에도 오래도록 여자 구경을 못 한 피에로와 다른 “피앙세들”과는 한 번도 자지 않았다는 타티아나 사이에 알콩달콩한 호감이 싹트긴 한다. 물론 그 호감이 지속되지 못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래도 풀리주악 노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터넷은 현실의 소통을 되살렸다. 서로를 방문하는 일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노인들은 컴퓨터 안의 일을 위해 쥘리에트의 집에 모여들어 컴퓨터 밖에서 공모하느라 살을 맞대고 앉아 얼굴을 들이밀고 서로의 입김을 느끼며 두런대기 시작한 것이다. 피에로는 “아직 삶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삶을 마감하는 사람들에게 에워싸여 있는” 그 숨 막히도록 음습한 느낌에 따뜻한 공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낀다. “세월이 조금씩 갉아먹고 공동화, 고립, 소외가 단절시켜버린 그 끈끈한 관계”가 부활한 것이다. 쥘리에트는 그것을 “행복한 기적”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