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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펀치
엘모어 레너드 지음, 최필원 옮김 / 그책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우리나라에 출간되는 유명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작품의 원작 소설의 우울한 운명이라면 책의 홍보에 작가보다는 영화에 관련된 것들이 더 홍보된다는 점이다. 작가의 이름보다는 영화감독의 이름, 책의 제목보다는 영화제목을 더욱 부각시키게 되는데 엘모어 레너드의 『럼 펀치』 역시 마찬가지다. “하드보일드의 거장이자 펄프 픽션의 제왕”이라 불리는 엘모어 레너드도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름에는 밀려 버렸다. 펄프픽션(Pulp Fiction)-이 역시 쿠엔틴 타란티노의 동명 영화가 있다-은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싸구려 소설 잡지를 부르는 말로 잡지가 값싼 갱지(Wood Pulp Paper)로 만들어져 있었기 때문에 "펄프(Pulp)"란 이름이 붙었으며, 펄프 매거진에 실린 소설 또는 잡지 자체를 펄프 픽션(Pulp Fiction)이라 부른다. 우리말로 이야기한다면 싸구려 잡지소설 정도가 될까? 주로 추리물, SF, 미스터리와 같은 장르소설들이 많았다고 하니, 최근에야 바뀌고 있지만 외국 역시 장르소설에 대한 인식은 가볍게 읽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이었나 보다.
미모의 항공기 승무원인 재키 버크는 무기 밀매업자인 오델의 무기판매대금을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운반해 주고 수수료를 받는 일을 한다. 오델의 5만 달러를 가지고 입국하던 재키는 거액과 코카인 소지죄로 체포되게 되고 오델은 보석금을 내고 재키를 풀어주게 된다. 하지만 재키는 풀려난 뒤 범죄자 오델에게는 50만 달러 밀반입 제의를, 자신을 체포한 수사관 레이에게는 오델을 체포하는 대신 자신의 죄를 없애줄 것을 원하는 거래를 제의한다. 재키는 50만 달러도 가로채고 자신의 죄를 없애려는 거대한 규모의 계획을 실행한다.
『럼 펀치』는 영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소설이 쓰인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소설이 갖는 일반적인 느낌은 희박하다. 엘모어 레너드의 글쓰기 10가지 원칙에 입각해 서술을 최대한 생략해 간결하게 하고 생생한 대사와 분위기만으로 등장인물들의 개성을 드러내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가의 능력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닌 보여주는 것처럼 읽히는 이 책은 영화화 되는 것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의 광고만 보고 쿠엔틴 타란티노의 「재키 브라운」에 끌려 영화도 보려고 계획했다면 반드시 『럼 펀치』를 먼저 읽을 것을 권한다. 영상의 이미지는 꽤나 강렬해서 등장인물의 얼굴이나 느낌이 자꾸 떠올라 책 읽기를 방해할 수도 있다.
출판사에서는 당시의 펄프픽션을 재현하려 한 듯 갱지 스타일의 종이로 책을 만들었지만 글꼴의 크기가 꽤 작아 사람에 따라 읽기가 불편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갱지 스타일과 작은 글꼴 둘 다 좋아해서 특별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