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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리디 쌀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킹사이즈 햄버거 왕 토볼드와 그의 전기 집필을 위해 고용된 여성 작가의 관계가 꼭 회사와 나를 고스란히 빗대놓은 것 같아서 리디 살베르의 능청스러운 풍자에 웃지 않을 수 없다가도 이내 씁쓸한 기분에 사로잡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회사(이익을 추구하는 회사라면 99.9% 여기에 해당하겠지!)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마음속으로만 항변하면서 매달 지급되는 월급의 안정적인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꾸역꾸역 일하는 직장인이라면, 좀더 생생하게 공감하면서 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토볼드는 가난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의 밑바닥 생활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서 자수성가한 세계적인 재벌이다. 그는 청소년기에 훔친 오토바이를 팔아넘기고 스트립쇼 클럽의 주먹 노릇을 하며 죽음도 불사하고 폭력과 협잡, 음모로 벌어들인 ‘피 묻은 돈’을 밑천 삼아 두 시간에 한 군데씩 지구 곳곳에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문을 여는 킹사이즈 햄버거 왕국의 제왕이 되었다. 그는 엄청난 부의 비호를 받으면서 자신이 냉혹하게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막강한 힘을 신봉했고, 그 원천인 ‘돈’을 숭배한다. 그리하여 온갖 궤변으로 가득한, 그러나 씁쓸하게도 꼭 틀리지만은 않게 들리는 소리들을 강박적으로 늘어놓으며 세상을 지배하는 돈의 복음을 전파하려 한다. 자기가 어떻게 돈 자체가 되었는지 설파하는 전기를 통해서 말이다.
‘나’는 토볼드의 전기를 집필하기 위해 고용된 작가다. 또한 문학을 사랑하는 자유 영혼의 소유자이고, 기존 체제와 문학의 관성을 전복하는 반항적인 아웃사이더이자 이단아이며, 영혼을 구원하는 예술의 힘을 믿는 소설가다. ‘믿었던’이라고 과거형을 써야 할까, 어쨌든 그녀는 어처구니없이 비약적이고 오만하며 천박하기 그지없는 토볼드의 복음을 경멸하고 혐오스러워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속으로 울부짖는 메아리일 뿐이다. 여태껏 자신을 지탱해 준 작가라는 자긍심과 자존심은 토볼드가 제공하는 돈의 사치와 향락 앞에서는 그저 알량해질 따름이다. 그녀는 속으로는 끊임없이 항변하지만 결코 입 밖에 내지 못한 채 마음과 달리 토볼드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하다.
하지만 세상의 어느 누가 그녀를 비겁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이놈의 회사, 당장 때려치워야지’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둔 채 오늘도 아침 일찍 출근해 혹시 사장의 눈 밖에 나지 않을까 눈치 보면서 돈에 몸과 정신과 양심까지 파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돈 앞에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고 굴복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리디 살베르의 냉소적인 풍자가 빛난다. 리디 살베르는 토볼드만 조롱하지 않는다. 가방을 쌌다 풀기를 수십 번, 스스로의 비겁함을 누구보다 자명하게 인식하고 자기 양심과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면서도 토볼드가 흘리는 돈 부스러기 때문에 그의 곁을 차마 떠나지 못하는 작가인 그녀도 리디 살베르의 뼈 있는 시선을 빗겨 가지 못한다. 리디 살베르는 처음에 ‘돈’과 ‘문학(혹은 돈 이외의 가치)’으로 대변되는 전형적인 두 인물을 대척점에 세워두지만, 그 본질이 무엇이든 ‘인간’이 끼어들면 결국 별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는 돈을 사랑한다고,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돼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거나, 돈을 사랑하긴 하지만 돈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순진하게 자신을 속이거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 소설의 마지막에 토볼드가 자선사업에 뛰어들게 되는 과정은 의미심장하다. 그토록 돈의 복음을 부르짖던 토볼드는, 편안한 잠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는 지금껏 자기 삶을 지탱해 준 ‘돈’이라는 신념이 무너져 내리는 경험을 하고 자선사업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리디 살베르는 돈으로 모든 것이 교환되는 사회에서 돈을 대하는 자세가 그리 쉽사리 바뀔 수 없는 현실을 꼬집는다. 그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던 거물이었던 만큼 자선사업도 그에 못지않은 규모로 벌여서 자기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그것이 또한 돈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서라는 명목은 한번 무너뜨린 돈의 신념을 더욱 탄탄하게 다시 쌓아올리는 데 세상에서 가장 그럴싸한 핑계가 되어준다.
그게 못내 씁쓸한데, 순백색 참회나 장밋빛 전망을 보여줬더라도 만족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미 세상을 진절머리 나게 경험해 왔으니까, 그럼에도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렇다고 세상을 바꿀 수도 없으니까. 내게 남은 과제는 단 하나다. 정말로 돈보다 소중한 나의 이상이 이리저리 부대껴 세상에 마모되지 않도록 신경을 예민하게 곤두세우는 것, 설령 세상과 타협하게 될지라도 정말로 돈보다 소중한 나의 양심과 어긋나면 충분히 괴로워할 것. 그런 고통조차 없다면 그것은 심장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