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 서영은 산티아고 순례기
서영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고 스페인의 수호성인이기도 한 야고보(스페인식으로 하면 ‘산티아고’라고 한다)의 무덤이 있는 스페인 북서쪽의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너무나 유명한 순례길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자임을 알려주는 조개껍데기를 배낭에 매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걸었던 그 길에 2008년 당시 예순여섯 초로의 소설가 서영은이 섰다. 그리고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는 개신교인인 그녀가 그 길을 걷고, 또 걸은 뒤 자신이 무엇을 체험하고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고백하는 신앙고백이다. 그 고백은 담담한 문체 안에서도 사무치게 절절하도록 울린다.

그런데 독실한 종교인이 아니라면 그게 사뭇 낯설어 그녀의 성스러운(이렇게 말할 도리밖에 없다. 그녀 자신의 마음가짐이 내내 그러했다고 무수히 암시하므로!) 순례길을 따라가는 일이 마음 한구석에서는 적이 불편해진다. 종교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자기 본위의 해석에 따른 체험이기에 다른 누가 깊이 공감하기도, 뭐라 섣불리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잘못 집어 든 책에 대한 이 난감함을 어쩔까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와중에, 그녀가 ‘치타’라 지칭하는 동행에게 보이는 감정과 태도는 더욱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뿐인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릴 만큼 어찌나 치타를 대하기가 민망하던지.

산티아고로 함께 가는 내내 (서영은의 글대로라면) 두 사람은 마치 같은 길이 아니라 생판 다른 길을 걷는 듯 삐걱거린다. 하나의 길이라도 걷는 마음과 목적과 기원에 따라 만 갈래 길인 법이라서 같은 길을 걸어도 본질적으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이지만, 그 길이 어느 길이라도 다른 무수한 길들보다 우월하거나 저열할 수 없다. 그런데 그녀는 내심 모든 세속적인 것을 내려놓고 신께로 가까이 다가가는 자신의 길이, 여전히 박물관이나 미술관, 유명 건축물 등에 관심 있는 치타의 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순전히 그녀의 일방적인 말만 들으면, 치타의 세속적인 행동은 그녀를 성가시게 하여 종교적인 명상, 혹은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을 방해한다. 그러면서도 치타는 눈치코치 없어 그녀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려 할 때 자신이 그 길을 주도하지 못해 삐친다. 베트남에서 욕심껏 산 망고를 프랑스에서 먹으려고 무딘 칼로 깎으면서 망고 즙으로 범벅을 하는 치타가 창피하고, 알베르게에서 다들 커피 한 잔에 잼을 바른 토스트로 아침식사를 할 때 치타가 불을 차지하고 이것저것 요리를 하는 것도 마땅치 못하다. 치타에 대한 그녀의 불만은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그럼에도 왜 편치 않은 마음으로 끝까지 동행했는가? 더더구나 이렇게 속속들이 공개적으로 고백할 요량이었다면 말이다. 치타는 손위 제자라고 소개되는데, 그렇다면 그녀는 일흔에 가까운 노인이다. 그런 그녀가 서영은을 위해(순전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꺼이 산티아고를 향해 걷기로 했다면, 그녀는 진작 치타에게 자기 마음을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각자의 길을 걸어야 하지 않았을까? 혹시 이 책을 읽고 치타가 상처를 입을까 봐, 모욕감을 느낄까 봐 두렵다. 치타가 주인공이 아닌 책을 읽고서 줄곧 치타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그건 이 책을 읽는 내내 치타에게 마음이 쓰였기 때문일 것이다.

서영은의 신앙고백에는 깊이 교감하지 못했지만, ‘노란 화살표’ 이야기는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노란 화살표는 산티아고로 향하는 길 곳곳에 숨겨져 있다. 노랗게 빛나는 그 흔적들은 이전에 산티아고로 걸어갔던 모든 순례자들이 자신을 뒤따라 그 길에 설 다음의 모든 순례자들을 위해 산티아고 방향을 남겨둔 것이다. 담벼락, 나무, 돌멩이, 울타리, 팻말, 그들이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이라면 어디든. ‘산티아고’라는 목적지를 품은 순례자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반갑게 튀어나오는 노란 화살표가 더 이상 숨겨진 표식이 아니다. 그들의 눈에는 유독 환하게 들어오는 이정표다. 또한 산티아고를 가리키는 그 화살표들이 마음속으로 들어오면 더 이상 길의 방향만 알려주는 단순한 표시가 아니다. 마음속의 노란 화살표들은 자신이 가닿고 싶은 삶의 방향을 향해 죽 늘어서서 다른 삿된 곳에 눈길을 빼앗기지 않도록 반짝인다. 우리가 의지해야 할, 삶의 목적이자 의미인 그 반짝임은 꼭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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