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찌꺼기
톰 매카시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줘야 하는 것이 지금 사회의 당연한 이치다. 얻는 것이 클수록 자신이 내 놓아야 하는 것도 큰 법이다. 예전부터 분명 누구나 한번쯤은 해 보았을 상상이 있다. 자신에게 엄청난 돈이 들어오는 대신 중요한 무언가를 내 놓아야 한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줄 수 있을까?원하던 원하지 않던 나는 기억을 잃었고 850만 파운드를 가진 부자가 되었다. 톰 매카시의 <찌꺼기>는 이런 이야기다.
나는 알 수 없는 사고를 당했다. 아마도 어떤 단체-정부일 수도-의 알 수 없는 실험인 듯 그 대가는 850파운드라는 엄청난 보상이 생겼지만 그 대신 기억을 잃었다. 기억을 잃긴 했어도 100억을 가진 엄청난 부자가 되었기 때문에 제법 공정한 거래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기억을 잃은 것 덕분에 우울하고 편집증적인 사람이 되었다. 850만 파운드의 5자가 거슬린다. 800만이면 더 좋을 텐데…… 50만 파운드가 군더더기며 찌꺼기 같다. 희미한 기억에 의지해 자신을 되찾기로 한 나는 거대한 세트장을 만들어 희미한 기억 속의 상황을 연출한다. 하지만 기억은 돌아오지 않고 연출된 상황이 가짜라는 느낌에 시달리게 되고 진짜 기억을 찾기 위해서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된다. 마침내 나는 진짜 기억을 찾고 자신의 진짜 모습을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임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에 주인공의 이름은 없다. 그저 ‘나’라고 등장할 뿐, 그것이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당신일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사람일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고 다시 자신을 찾을 수도 없는 한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톰 매카시의 『찌꺼기』는 작가의 성향 때문인지 이해하기 힘들고 낯선 이야기지만 영화 [트루먼 쇼]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영화화한 [블레이드 러너]를 둘 다 본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접근하기가 좀 더 쉬울 것이다. 나의 현재 모습이 가짜라는 괴리감에 휩싸여 진짜가 되고 싶은 욕망-블레이드 러너의 안드로이드-에 희미한 기억에 집착하게 되고 모든 것을 통제-트루먼 쇼의 PD-하려 한다. 자신의 희미한 기억을 단서로 자신을 찾기 위해 만들어 낸 세트장은 이제 실제 없었던 일마저 만들어 내는 장소로 변해 버렸다. 결국 돈이라는 권력으로 모든 것을 통제한 나는 그 세트장에서 파라오처럼 신이 되어 모든 것을 지배하기를 원하고 나를 따르는 광신도까지 생겨난다.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하자 스스로 진짜를 만들어 내고 결국엔 이것들을 지속시키기 위해 자신이 만들어 낸 진짜들과 함께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우주도, 태양도,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도 사라지게 되었을 때 전에 느낄 수 없었던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