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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바람난 여자
아니 프랑수아 지음, 이상해 옮김 / 솔출판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마치 죽이 잘 맞는 친구와 엉덩이가 아픈 줄도 모른 채 오랫동안 수다를 떨고 난 것 같다. 서로의 이야기에 열렬히 호응하거나, 아무리 마음이 통해도 의외로 다른 점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고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그 뜻밖의 모습까지 포용하는 대화 후의 흡족함. 하지만 아니 프랑수아의 『책과 바람난 여자』 마지막 책장마저 덮었다. 아직 엉덩이가 아프지도 않은데!
이 책의 원제는 ‘Bouquiner’로, 이 단어는 ‘책과 교미하기’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책과의 섹스’ 정도의 관능적인 의미일까 싶어서 심장이 콩닥거렸는데 불영사전에는 ‘familiar to read’로 무난하게 뜻풀이되어 있다. 어쨌든 아니 프랑수아는 책 자체에 대한 애정이 지극한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참 좋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책의 내용에 집중하기보다 책과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필연적으로 따라붙기 마련인, 혹은 집착하게 되기 마련인 소소한 것들과 사소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것이 바로 이 사랑스러운 책의 매력이다. 번역본의 부제에는 ‘부작용’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책에 빠져 있는 사람에게는 그조차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증표’다. 대놓고 그에 대한 불평을(하지만 조금은 뿌듯함도 느껴지는) 늘어놓는다고 해도 말이다. 적어도 그 사실을 굳이 숨기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정혜윤의 『침대와 책』이라는 책도 있지만, 침대와 책은 정말 불가분의 관계인가 보다. 그녀도 침대에서, 그것도 누워서 책을 읽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나도 집에서 책을 읽을 때는 침대부터 찾는다. 커다란 베개를 등 뒤에 받치고 상체만 살짝 세운 채 이불을 끌어당기고 배와 가슴 사이에 쿠션 하나를 올려 책을 받친다. 이런 자세는 너무나 편안하고 따뜻해서 시간을 가리지 않고 금세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그녀는 ‘잠의 열차’를 고의적으로 놓친다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빠져드는 달콤한 잠도 독서의 고물이다. 책 읽을 시간을 그만큼 앗아가도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책을 읽다가 그대로 잠들다 보니 뒷목과 어깨가 수시로 결린다. 그녀는 ‘독서광 일반 병리학’이라는 제목 아래 책 때문에 유발되는 병명들을 늘어놓는다. 척추 변형(무거운 책이 든 가방을 어깨에 메고 다니느라), 경부 관절통(책을 들여다보느라), 팔꿈치의 못이나 접촉성 피부병(책을 읽으려면 팔꿈치를 어딘가에 괴게 마련이므로), 청력 저하, 혹은 일시적 후각상실증(책에 정신 팔려서), 시력 저하(두말하면 잔소리!), 변덕(이 책에서 저 책으로 옮겨 갈 때 도무지 맥락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요즘은 맥락을 가지고 독서하는 사람이 많지만 내 경우에는 딱!), 그리고 기억상실증! 다른 병들을 이야기할 때는 사실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억상실증’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몰두했더라도 다음 책으로 넘어가 열중하고 있으면 바로 전에 읽은 책도 가물가물하다. 인물의 이름은 물론 자세한 줄거리, 심지어 가끔은 제목까지! 뭔가를 읽기는 했다는 기억만 남아 있을 뿐.
그리고 그녀처럼 책에 관해서라면 팔랑귀가 되어버리고 만다. 누가 책 이야기를 하면 귀를 활짝 열고 본능적으로 기억해 둔다. 그가 그 책에 대해 열정적으로 극찬하면 나는 그 미끼를 덥석 물고 일단 그 책을 구해 놔야 안심이 된다. ‘(책) 빌리기’와 ‘공공도서관’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실 나는 어떤 방식으로든 내가 읽는(혹은 읽을) 책은 모두 내 소유로 들인다. 그녀도 동의하는, 빌린 책의 불편한 신성함으로 인해 내 마음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도 돈과 공간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책은 내 물욕의 극치다. 아무리 책을 사들여도 여전히 사고 싶은 책은 넘치고 돈은 턱없이 모자란다. 책값은 물론 책을 보관할 공간을 마련할 비용도. 당연히 집안 곳곳에 쌓여가는 책 더미들 때문에 깨끗한 인테리어는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그녀는 말한다. “점점 더 넓은, 하지만 점점 더 가난한 동네에 있는, 나중에는 교외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슬프지만, 그럼에도 책을 향한 물욕은 언제나 허기진다.
이 물욕 때문에 나는 결코 그와 결별하지 못할 것이다. ‘중복’에서 그녀가 지금은 아무리 사랑해도 언제 남편과 헤어질지 모르므로 “헤어질 경우 책을 나누는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일이 없도록” 두 권씩 샀다는 이야기를 할 때 미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이 문제로 그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면 책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하지만 그도 나도 단 한 권도 포기할 마음이 없었다. 우리는 결국 최대한 함께 살기로 결론지었다. 책 덕분에.
이외에도 출판사에서 30년을 일한 베테랑 편집자답게 띠지(“성가시긴 하지만 버리기가 영 찜찜하다.” 예전에는 띠지를 가차 없이 벗겨냈지만, 이젠 편집자가 그 띠지의 자극적인 문구를 쓰느라 얼마나 골머리를 앓는지 잘 알고, 게다가 시간이 지나서 다시 보면 엄청나게 촌스러워서 코미디가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다시 띠지를 둘러둔다.), 바코드(“책은 결코 상품이 될 수 없다. 관리 시스템의 승리를 과시하는 그 우스꽝스러운 쇠스랑 자국을 보면 나는 분통부터 터진다. 그 창살들 뒤에서 보기 흉한 음모가 펼쳐진다. 향수나 기저귀에도 바코드는 있지만 그것은 포장지에 있다. 그런데 책에는 직접 새겨져 있다. 생살에, 낙인처럼.”)같이 책의 외형에 관한 이야기도 풍부하다. 충분히 공감할 만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는.
앞에서 ‘소소한 것들과 사소한 일들’이라는 말을 했지만, 아니 프랑수아가 쏟아놓는 이야기들은 책을 탐닉하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소소하지도, 사소하지도 않다. 그들은 이런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다른 무엇보다 중대한 문제라는 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