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페터 빅셀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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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간 초등학교에서 재직했고 이후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선 페터 빅셀의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Heute Kommt Johnson Nicht Kolumnen』는 기다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대에 와서 실종되어 버린 기다림, 이것은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기다릴 수 있는 여유를 갖는다는 것은 시간을 소비하는 일이다. 시간을 허투루 소비하는 것이 죄악처럼 여겨지는 요즈음 세상에서는 효율성이야말로 최고의 가치-특히 요 몇 년 사이 유난히 강조하긴 하지만-처럼 여겨지고 또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어진 우리에게 75세 먹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어떻게 와 닿을까?

우리나라에서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죄악이다. 여유-금전적인-가 있으면서도 시간이 많다면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고 여유가 없으면서도 시간이 많다면 경멸과 멸시의 대상이 된다. 삶 때문에 시간을 갖기 힘든 우리나라다.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휴가를 쓰는 것인데도 온갖 눈치를 봐야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여유를 찾을 수 있을까? 일에 지쳐 주말에는 녹초가 되어 쓰러지고 월요일이 되면 또 일을 하러 나간다. 아이들이라고 별다를까? 코흘리개 꼬마 아이들부터 자기 몸만한 가방을 메고 온갖 학원에 다니며 시간을 쪼개 활용하고 있다. 심각하게 잘못된 것은 분명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뒤쳐진다고 강요를 받을뿐더러, 요즘 세상이라면 실제로도 그렇게 되기 쉬우니 그저 안쓰럽기만 할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되면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삶에 시간과 여유를 가져야 했어'

페터 빅셀이라면 이렇게 대답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시간이 충분히 남았잖아?' 페터 빅셀의 사물을 보는 관점이 독특하다는 것은 『책상은 책상이다』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인간에 대한 관점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아니 인간을 바라보는 것 역시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기차 시간표를 외우고 있으며 시간이 많은 것처럼 보였던 에밀이라는 지적장애인을 보며 어린 페터 빅셀이 생각했던 것은 '에밀처럼 시간이 많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페터 빅셀은 동물원에서 아이에게 동물의 이름을 가르쳐 주려는 부모보다 동물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 아이들이 가진 삶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공유한다. 사물에 대한 것이건 인간에 대한 것이건 이런 새로운 관점이 우리가 쉽게 잊고 살아왔던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관조하듯 들려주는 페터 빅셀의 이 산문집에는 특별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아직 젊거나 어리기 때문에 담담히 들려주는 이 이야기에서 굳이 무언가를 찾으려 해도 보이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페터 빅셀의 이야기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의 삶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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