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렌 포스터 작가정신 청소년문학 1
케이 기본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작가정신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사실 제인 에어와 앤 셜리를 닮은 꼬마 여자아이라는 출판사의 소개에 내 귀가 팔랑거렸다. 제인 에어와 앤 셜리는 내가 얼마나 사랑해 온 불멸의 캐릭터던가. 게다가 몇 개의 문학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이건 보증수표야, 싶었다. 하지만 케이 기본스의 엘렌 포스터는 몹시 냉소적이어서 마음이 한없이 껄끄러웠다. 외면하고 싶은 풍경인데 한번 바라본 눈길을 도저히 거두어들일 수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는 느낌이 『엘렌 포스터』를 읽는 내내 마음 한 켠에 불편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얼마나 단란한 가정에서 얼마나 사랑받고 있느냐는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아이를 가리키는 ‘애늙은이’라는 말은 처연하기 그지없다. 아이가 아이답지 않다는 것은 아이가 아이답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어른들이 어떤 폭압적인 외압을 가했음을 의미한다. 티 없이 말개야 할 아이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애늙은이’라는 가면을 계산적으로 쓸 수밖에 없다. 제 나이답게 자라야 할 아이에게 ‘저 아이, 참 어른스럽구나!’는 결코 칭찬이 될 수 없다.

엘렌은 애늙은이 이상이다. 열한 살 어린 소녀였어야 하는 엘렌은 왜 지독히 냉소적이고 타산적인 어른의 가면을 둘러써야 했을까?

일단 마땅히 사랑 속에서 보호받아야 할 엘렌을 보호해 줄 어른이 없었다. 술주정뱅이에 폭력적인 날건달인 아빠는 물론 그런 아빠에게 상처받아 심장이 고장 난 병약한 엄마도 자기 상처에 몰두해 끝내 죽음을 선택할 우울에 빠져 있을 뿐 엘렌을 돌볼 여력까지는 없다. 오히려 엘렌이 아빠로부터 엄마까지 보호하려 애쓴다. 엘렌이 차라리 방치되어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었겠지만, 엄마가 자살한 후 아빠는 만취하여 엄마의 이름을 부르며 엘렌을 범하려 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엘렌이 한 번도 ‘할머니’라 부르지 않은 ‘엄마의 엄마’는 자기 딸을 죽게 한 아빠 대신 엘렌을 증오의 대상으로 삼아 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노동으로 괴롭힌다. 엄마의 자매들도 엘렌을 진심으로 보듬어주지 않고 골칫거리로 여긴다.

엘렌은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기 위해 모든 일을 스스로 대처해야 하므로 어른만큼 똑똑한 양 매사를 따질 수밖에 없다. 씩씩한 척, 강한 척, 단단한 척, 어른스러운 척하지만 그리 괜찮아 보이지 않는다. 엘렌은 학교에서 흑인 여자아이 스타레타를 제외하고는 아무와도 도통 어울리려 하지 않는다. ‘엄마의 엄마’의 시신을 조화로 장식하는 장면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자신을 위해 아무도 주지 않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직접 준비하는 엘렌의 모습은 행복한 가정에서 진심이 깃든 사랑 속에 살며 보호받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아프다. 아이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그 소박하고 평범한 권리가 엘렌에게는 좀처럼 허락되지 않는 꿈이다.

엘렌은 늘 행복한 가정을 열망한다. 서로를 사랑하고 아이에게는 다정한 엄마와 아빠, 모락모락 흘러나오는 굴뚝 연기, 엄마가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스토브, 아이를 위해 정성껏 준비한 선물 등 스타레타의 집은 몹시 가난한 흑인 가정이지만 백인인 엘렌의 냉기 흐르는 집보다 훨씬 따뜻하다. 이곳은 엘렌을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엘렌의 집은 아니다. 아빠의 폭력을 피해 잠시 머물렀던 줄리아 선생님의 집도 전형적인 행복한 가정이지만 엘렌은 이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그리고 엘렌은 자신도 행복한 가족의 일원으로 안착할 수 있는 집을 스스로 선택한다. 이렇게 엘렌의 행복한 가정 구하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엘렌의 해피엔딩은 처음부터 마련되어 있다. 이야기는 줄곧 엄마의 죽음부터 시작되는 엘렌의 불행한 과거와 엘렌이 스스로 선택한 행복한 현재가 번걸아 진행된다. 그 때문일까, 왠지 행복한 현재에도 과거의 불행이 그늘져 있는 듯해서 안타까운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불행한 과거가 깨닫게 한 진실, 행복한 현재에도 다시 다짐하게 되는 진실은 뼈아프다.

   
  내가 걱정해야 할 것은 잘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똑같은 가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와 똑같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누군가가 뒤에서 불러 세우면 그 사람의 손에 들려 있는 게 칼은 아닌지 어깨 너머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게 흑인의 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들려 있는 게 칼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니까.
 
   

사소한 행복에도 절절히 감격에 겹는 아이, 엘렌에게 부디 어른의 한 자락도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가 어른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꼿꼿이 세우는 가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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