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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라우라 레스트레포 지음, 유혜경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10월
평점 :
광기는 전염된다. 특히 광기의 원인이 집단의 부조리가 동반되어 있을 경우 전염 속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거대 집단의 광기는 소규모 집단에게 전염된다. 사회에서 가족으로 그리고 가족의 구성원인 개인으로 빠르고 강하게 전염되고 개인은 서로에게 광기를 전파하게 된다.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광기』는 콜롬비아라는 거대한 사회가 개인에게 전염시킨 광기를 통해 개인의 삶이 얼마나 황폐화되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 이후 독재정권과 마약으로 인해 부정부패가 일상화된 콜롬비아는 정상적인 사회구조를 가졌다고 볼 수 없다.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광기』는 크게 네 줄기의 이야기를 따른다. 아내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아길라르는 대학교수였지만 콜롬비아의 현실에 아내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때문에 애완동물 사료를 배달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 아길라르가 아내 아구스티나의 낯선 모습을 어느 호텔에서 발견하고 미쳐버렸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광기의 원인을 찾기 위해 나선다. 아구스티나의 광기는 외할아버지인 포르툴리누스로부터 물려받은 것처럼 보인다. 음악가면서 독일 이주자인 포르툴리누스는 사회적 광기에 의해 희생된 평범했던 다른 사회의 사람이기도 했다. 아구스티나의 어린 시절 자신의 이야기를 막내인 비치의 이야기와 함께 들려준다. 마초적이지만 매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흠모와 소피 이모와의 바람으로 인한 배신감, 여자 같다는 이유로 행한 남동생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은 가족 간에 내재된 광기를 암시하고 있다. 결국 비치의 가출과 아구스티나의 낙태로 인해 아버지는 심장마비로 죽고 남은 유산은 오빠인 호아코가 독차지하게 된다. 돈세탁을 하는 미다스 맥알리스터는 아구스티나를 임신시켜 놓고 버린 남자로 아구스티나에게 가족의 숨겨진 이야기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부자로 살 수 있던 아구스티나 가족과 미다스의 관계는 부정부패로 가득한 콜롬비아 역사의 축소판이다. 아구스티나의 광기를 감싸고 있던 것은 가족의 광기이며 결국 이것은 콜롬비아의 사회적 현실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먼저 정화되어야 한다. 어쩌면 이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이 미친 세상에서 미치지 않은 자, 과연 누구인가?”라는 직설적이고 자극적인 카피처럼 광기 어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 미쳐가야 할지도 모른다. 라우라 레스트레포의 『광기』에서 드러난 마약과 폭력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피부로 와 닿지는 않지만 멀리 볼 것도 없이 다른 형태의 광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흔하다. 독재에 저항하다가 희생된 사람들에게마저 붙여버린 빨갱이라는 지긋지긋한 꼬리표는 얼마나 흔한 형태의 광기의 표출인가. 결국 이것은 우리 이야기이기도 하다.